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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Jan 06. 2021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6)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죽기 전까지도 알듯 말듯한 게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타인에 대한 분석은 그렇게 잘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가서 시작된 나의 정체성에 대한 방황은 나날이 복잡해졌다. 


19살이란 참 재미난 나이다. 어른인데 어른이 아닌, 애 같은데 애도 아닌. 어디서는 담배 피워도 되고, 어디서는 결혼도 되고, 어디서는 투표도 되고, 어디서는 애를 키워도 되는 나이. 싱가포르에선 18살부터 술도 살 수 있고, 흡연도 되고, 결혼도 된다. 투표는 아직까진 21세부터 가능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18세부터 투표가 가능하다. 한국은 정치는 되는데 반대로 술 담배는 안된다. 참 재미난 문화적 차이다.) 그래서인지, 독재에 가까운 싱가포르에서 청년들은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다. 하지만 내가 예술 계열의 학교를 다녀서 그랬는지, 학생들과 교수들끼리 논란이 되는 이슈들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만, 시위가 법적으로 엄하게 통제받는 나라여서 한국 대학생들이 다들 한 번쯤은 나가보는 데모에 참여한 경험은 없다. 


대신, 도대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다시 자문하는 것도 난리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 어린-어른이가 뭘 알겠는가? 매일 답도 없는 질문을 머릿속으로 반복한 것 같다. 더 이상 부모님께 답을 구할 수도 없고, 아직 세상을 다 산 것도 아니기에, 쉽게 답을 찾기 힘든 게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의지할 수 있었던 대학 친구들을 꽤 진지하게 대했고, 그들과 이야기하느라 외박도 자주 했다. 이들도 비슷한 고민과 갈등에 빠져있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다행히도 나보다 성숙한 친구들을 만났던 것 같다. 꽤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고뇌를 이들과 나눌 수 있었다. 방학 때는 이들과 여행하거나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만의 분위기에 취해 인생에 대해 탐문했다. 또한 다행인 것은 범죄나 안전 문제에서 매우 자유로운 곳이었기 때문에 이색적이고 영화스러운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영화스러운'이라 함은;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거나, 그냥 올라간 건물 옥상에 앉아 저 멀리 풍경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태우거나, 사원이나 절에 들려 아무 연고 없는 사람들과 의식에 참여하거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 동이 틀 때 잠들거나, 아무 배나 올라타서 주변 섬에 들려 사진을 찍다 오거나, 모르는 친구의 친구 집 파티에 들어가 실컷 춤추거나, 장거리 야행 버스를 타고 주변 국가로 여행을 갔다 오는 일, 등을 말한다.)

   

이때 사귄 대학 동창들은 대부분이 디자인을 업으로 삼아 광고나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소수는 업종을 바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싱가포르를 떠난 지 20년이 지나, 얼마 전 여행으로 가서 다시 만난 대학 동창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따스하게 나를 맞이해줬고, 지금도 연락이 이어진다. 대학 때 내 모습에 대해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내가 예술가가 될 것 같았다,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교수들이 쉽게 대하지 못했던 학생이었다, 싱가포르가 내겐 좁아 보였다, 등이 있었다. 들어보니 내가 겉으로는 참 어른스러웠나 보다. 안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큭. 


그렇게 헤매던 중, 문득 어릴 적 떠나온 내 부모의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홀로 훌쩍 한국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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