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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May 14. 2021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9 End)

대학 동창들은 졸업하기 무섭게 디자인 회사, 광고 회사 등에 취직했다. 나도 1년 안에 정규직에 취직을 확정해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싱가포르는 대학 학비를 무료로 해주는 대신, 최소 3년을 노동? 하는 것으로 갚게 되어있다. 나를 풀타임으로 고용해줄 영화제작사를 찾는 동안, 파트타임으로 다양한 회사를 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인테리어 회사, 무역 회사, 광고 회사, 등을 다녀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잡일?을 경험했고 사회생활이 어떤 건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표는 여전했다. 영화사에 들어가 제작 일을 배우고 경험하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력서를 쥐어짜 써서, 추려낸 영화제작사들에 보냈고, 전화를 걸어서 자기소개를 했고,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심지어 맘에 드는 영화사 이사의 얼굴을 알아내 일부러 회사에 들렸다 인사를 건넸고, 영화 시사회를 하는 경우엔 일부러 찾아가서 그 회사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풀이에도 슬쩍 들어가 얼굴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럴 생각까지 했는지, 코웃음이 나온다. 정말 제작사에 들어가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추며 초조한 마음으로 1년이 다 지나갈 즈음, 연락이 왔다. 내가 손수 그림까지 그려 넣은 편지로 꾸준히 안부 인사를 전했던 회사였다. 부리나케 달려가 면접을 봤다. 회사는 신생 제작사였고, 막 첫 장편을 완성해 개봉한 곳이었다. 창립주인 세 명의 이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대학 영상과 동창이었고 졸업하자마자 합심해서 제작사를 차렸었던 거다. 나와 그다지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지만, 나보다 전부터 영화를 알고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사업, 한 명은 감독, 한 명은 프로듀싱 역할을 맡아서 회사를 운영했고, 나는 이 세 명의 첫 정규직 사원이 되었다. 여기서 벌어진 이야기는 브런치 책으로 만든 "영화감독은 어떻게 되나요?"에 적어 놓았으니 한번 읽어보시면 재밌으실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았다, 아니, 아직도 여전히 좋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어려서 눈치채고, 관련된 직장을 가졌었고, 배우고 경험하고 고민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싱가포르는 나 같은 루키에게도 기회를 주는 친절한? 곳이었고, 아마 지금도 비슷할 것으로 본다.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배울 기회는 잡을 수 있는 여유롭고 개방적인, 멋진 곳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곳에서 쭉 영화일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본다. 내가 일을 배우기 시작한 90년대는 막 싱가포르 영화계의 붐이 일어난 시점이다. 그렇게 꾸준히 성장을 해왔겠지만, 싱가포르의 관객수와 시장 규모의 한계는 변동이 없다. 아직도 연간 장편 영화 제작 수가 겨우 10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스크린 수는 300개도 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고 찾는 관람객은 항상 있지만, 산업 자체 규모가 크게 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싱가포르인이 되었다면 모를까, 그곳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영어는 물론 다양한 외국어, 국제 업에 능통한 곳이라서 자국 제작보다 합작에 더 유능하다. 현재 영화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이 어떻게 변모할지 지켜볼만하다.


20대까지의  인생은 그렇게 외국에서 살아 보냈다. 30대부터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색다른? 경험과 성장을 했다. 이제,  삶의 다음 반세기를 앞두고 있다. 살고 나면  재미난 글을   있기를 바라본다.


비바 라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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