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 外전: 궁금한 건 못 참아 ②]

'인류원리' 에 대한 생각

by 이진경

우주론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인류 원리’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의 우주 형성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는 필연적이라는 견해입니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기상천외하고 기묘한 우주의 형성과정이 결국은 인간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견해입니다.


정론은 아니지만 일부 물리학자들이 주장한 인류원리는 만사가 자기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또 다른 '천동설'버전으로 인류의 탄생은 우주 역사에서 전혀 특별하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자연을 필요로 하지만 자연은 하등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 혹은 생명체가 없는 우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여튼, 이런 논의는 왜 우리의 우주는 다른 모습이 아닌 지금과 같은 방식과 모습으로 전개되어왔는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견 충돌입니다. 그런데 인류원리가 마냥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치우친 아전인수식 결론이라고 하기엔 그렇게 단순치 않은 묘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주는 그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 의식을 가진 생명체를 필요로 한다”

유진 위그너(헝가리 물리학자)


우주론이 성립하려면 관측된 우주가 있어야 하는데 관측은 지적 생명체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즉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우주론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출현해야 한다는 결론이 아주 엉뚱하게 들리진 않습니다. 인류원리는 다중우주를 전제로 하는 주장입니다. 다중우주론이란 가설로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버전의 우주가 다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그러니까 우리 우주는 수많은 다른 경로로 전개된 여러 우주들 중 하나라는 견해), 그중 지적 생명체가 탄생한 우리 버전의 우주에서만 우주가 존재하고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지적 생명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다른 버전의 우주에서는 우주의 존재가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주의 존재와 의식의 출현 사이가 전혀 무관하다고도 볼 수 없겠지요. 우주에 관한 여러 의문들 중 왜 우주는 ‘없음’이 아니고 ‘있음’이냐 라는 근본적 물음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적절한 답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없다면 우주는 ‘없음’이(나 마찬가지)다!


있어도 알아보고, 알 수 있는 존재가 없으니, 의식이 없으면 우주도 없다, (유물론이 아닌) 유심론에 경도된 듯한 결론이긴 합니다만 현재로선 우주라는 실체와 의식이라는 작용 사이의 관련성이 혼란스럽긴 합니다. (의식 없는 우주가 존재할 수 있나) 어쨌든 우리 인간은 ‘의식(마음을 지칭하는 과학 용어)’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그런 이상 인간 중심적인, 인류 원리의 함정 안에서 세계를 해석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지금까지 짧지만 인류에 대해 올린 저의 글들, 앞으로 인류에 대해 더 많이 쓸 글들에도 어쩔 수 없이 ‘인류 원리’의 함정이 들어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르키메데스 점이 존재하지 않듯, 어떤 반박에도 무결점인 완벽한 관점은 존재할 수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전혀 특별하지 않으며 진화는 ‘progress(발전 혹은 진보 )'가 아니라 'evolution'(시간 흐름에 따른 전개 양상)일 뿐이라는 견해( 따라서 퇴보 역시 진화의 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자연에선 모든 생명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 변화해갈 뿐 그 결과들 사이의 우열이나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이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주인공인 인간의 서사를 다루다보면 불가피하게 ‘인류 원리’식의,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관점들이 노정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그것을 굳이 극복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을 생각임을 밝혀두려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가능한 과학적 데이터들에 기초하면서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해석하고, 그러다보면 가치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글들이 되지 않을까 미리 사정을 일러두려 합니다. 제게 있는 건 사안을 한 점 치우침 없이 들여다보고 측정할 수 있는 저울과 현미경이 아니라 단지 한계 많은 저의 의식(마음)일 뿐이니까요.


다만 흥미롭게 읽어주시면 더 바랄 바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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