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문학]
고대 문명 이야기 <1부>

인류는 왜 ‘문명’의 길을 택했나 - I

by 이진경

‘문명(civilization)’은 인류가 혈연 및 친족 관계를 넘어 더 큰 규모의 집단을 이룬 후에 가능해진 사회 발전 단계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질과 기술면에서 이전에 비해 질적인 발전을 이룬 사회를 의미하지만 그로 인한 파생 결과들(정신과 문화 전반의 수준 향상)까지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요. 대체로 자연발생적인 촌락공동체보다는 좀 더 조직화된 큰 규모의 ‘도시’가 형성되었을 때 문명의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나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고대 문명은 절대적 권력을 추구하는 왕조 중심의 제국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도시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지요(수메르, 이집트, 인더스, 그리스· 로마 문명 등)


문명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공동체가 작동되는 기본 토대이기도 합니다. 문명을 뜻하는 라틴어인 'civilization은 ’시민화‘를 의미합니다. 즉 자연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민다운‘ 행동양식을 갖춘 사람이 되어간다는 의미로, 문명사회란 시민들의 공동운명체라고도 할 수 있지요(’미개하다‘는 말은 ’uncivilized' 시민다움이 결여 상태를 의미). 원색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자신이 속한 야생의 세계가 가진 폭력성으로부터 독자적으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문명의 속성은 ’다듬어지고‘ ’길러진다‘는 의미에서 문화(culture:경작하다)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말 속엔 문명의 개념이 극적으로 잘 요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을 던지는 대신 욕설을 내뱉은 최초의 사람이 문명의 창시자였다."


최초의 문명, 즉 고대 문명은 어떻게 탄생했고, 그 양상은 어떠했을까요? 인문학은 왜 여전히 인류의 오래된 과거, 특히 ‘고대 문명’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오늘날에도 인문학 하면 제일 먼저 ‘그리스·로마’를 떠올리는 건 상식에 가깝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왠지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지요. 하고많은 고대 문명 중에 왜 유독 그리스·로마만 중요하다는 듯이 구는 걸까요? 여러 궁금증들은 앞으로 차차 살펴볼 이야기들입니다.


오늘은 근본적인 궁금증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대략 1만3천 년의 역사를 갖습니다. 지리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1만3천년 동안 벌어진 인류 문명의 성립과 전개 양상을 <<총·균·쇠>>에서 꼼꼼히 탐구하고 있지요. 지금으로부터 1만3천 년 전, 인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원시 자연 상태 그대로 계속 생존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이는 본능 외의 추가적인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은 전략으로 대다수 동물들이 적응한 방식) 인류는 왜 이 시기에 다시 되돌리기 힘든 문명의 파도를 올라타게 된 것일까요?


우선 전통적인 학자들이 내세우는, 기후와 지형 등 자연적 요소의 영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소극적인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1만 3천 년 전 극심한 자연환경이나 지리적 환경이 주는 제약 요소가 현저히 줄어드는 일이 생깁니다. 크게 두 가지 사건으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홀로세의 시작입니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한 기후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질시대를 말합니다. 간빙기의 따뜻한 기후는 인류에게 최적의 활동 여건을 제공하지요. 아프리카가 고향인 인류는 이 시기 유라시아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사건은 홀로세와 함께 시작된 농경의 출현입니다. 농경사회는 이전 수렵사회에 비해 딱히 진일보했다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먹이를 찾아 유랑하는 운명에서 정착이 가능해졌다는 점, 치열한 먹이 경쟁의 숙명에서 어느 정도 해방됨은 물론, 먹이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인류 역사의 중요한 국면이라 할 수 있지요. 다만 이때부터 남녀의 생물학적 기능 차이는 오히려 전면화됩니다(수렵사회는 남녀가 공동으로 작업하고, 공동 육아를 하는 평등사회로, 이 시기엔 남녀의 체격 차이가 별로 없었다). 농경사회는 '신이 남자인 사회'이고, 잉여 생산물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유지와 보충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요.


홀로세가 시작되고 3천 년이 흐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쯤(기원전 7,100년쯤), 신석기 시대 최초의 도시가 아시아 서쪽 튀르키예 남부지역에 건설됩니다. 인류 최초의 도시로 기록된 이 고대도시의 이름은 ‘차탈회위크’! 당시는 여전히 수렵사회였습니다. 아마도 새로 부상한 원시 농경과 병행하였으리라 짐작됩니다. 이 도시에는 인공 건물이 지어졌고, 자원을 도시민들끼리 공평하게 분배했으며, 생산 곡물을 제분하여 활용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차탈회위크의 전성기 인구는 최대 1만 명에 달했고, 도시는 약 1천5백 년 가량 지속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농경 시작 전 세계 인구 추정치는 대략 1천명이라는 보고가 있는데, 도시 하나가 그 열배인 인구 1만 명에 달하는 것만 봐도 도시의 폭발적 잠재력과 팽창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이면 번식도 왕성해져 개체 수가 늘고, 성공적으로 공존하게 되면 물적 자원의 규모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도시가 인류의 새로운 공존 패턴, 즉 문명을 잉태하기에 적합한 곳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대 문명이라고 할 만한 수준을 이르기엔 부족합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또 다른 3천 년이 흐른 후 바로 인접한 지역에서 등장합니다.


아마도 인류는 그들이 정착할 땅으로 이왕이면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찾았을 겁니다(그때는 땅이 공짜였을테니). 처음 만나는, 유량이 풍부하고 목이 좋은 강(江)가, 혹은 그 인접 지역이 당첨지역이었겠지요. 인류는 정확히 그런 곳을 찾아냅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오래된 카피로 뇌리에 박혀 있는 곳, (사바나로 이동중 기후와 질병, 기아, 사고 등으로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낸 뒤에 결국 찾아냈을)


'유레카' 라는 말과 함께 축복과 구원의 땅으로 떠오른 그곳, 바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리는 서남 아시아 일대, 현재의 이라크 지역을 말합니다. 대륙 한가운데 실핏줄처럼 갈라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지대를 중심으로 넓게는 서쪽 편 이집트의 나일강 상류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을 거쳐 시리아, 이라크 등 주요 이슬람 국가들을 지나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만과 인접한, 말 그대로 초승달 모양의 곡창지대입니다. 이곳이 바로 최초로 농경이 시작되고, 동시에 인류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가 탄생한 곳입니다. 기원전 4천년~3천년 전성기를 맞은 수메르는 모든 면에서 ‘최초’이자 ‘최고’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문자, 바퀴, 법전(함무라비 법전), 관개시설, 산업과 교역, 신전(지구라트), 서사 문학(길가메시)이 등장했던 고대문명국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 수메르 문명은 같은 시기 인근 이집트와 인도, 이후 중국, 그리스, 로마 문명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연쇄적 발흥의 신호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후 홀로세에 유라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가던 중 지금의 아랍(서남아시아)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최초의 문명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고대 문명이 전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단순히 호기심이나 역사 탐구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고대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최우선 과제로 실행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무한히 확장된 세계로 뻗어나간 오늘날의 인류에게도 무엇이 근원적이고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금 환기시켜줍니다. 그 문제들은 다음 편에서 살펴볼, 문명을 발생시킨 또 다른 요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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