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가 깔아놓은 ‘인본주의’ 판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유령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령이란 유령들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실제로 존재하고 작동하는 하나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시대에는 꽤 많은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유령도 존재하지요. 가깝게는 대략 200년 전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이성과 의지, 역사의 발전을 굳건하게 믿었던 어느 한 남자의 도발적 언사와 함께 등장했지요.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교황과 차르, 메테 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비밀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었다.
- <<공산당 선언>> 중
현대사의 굴곡을 만든 특정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이제는 인간이 설계한 여러 기획들 중 거의 ‘오답노트’로 분류되는 듯한, 어딘지 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전언의 일부지만 다시 보니 새삼 의문이 듭니다. 누구보다도 유물론적인 세계관과 역사적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자신이 가장 강력하게 믿었던 이념을 현실화하려 했던 사람이 왜 굳이 그 이념에 ‘유령’ 이라는 비현실적 개념을 썼을까, 하고 말이지요. 유령이란 본래 대다수 현실 세계의 사람들에겐 영향력이 없는 법이건만, 단지 미지의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비과학적’인 두려움과 편견을 경계하려고 했던 말일까? 아니면 현실로 도래한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세력들의 행태를 있지도 않은 '유령 때려잡기' 퍼포먼스로 폄하하면서 대중을 일깨우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극적인 강렬한 말로 이목을 집중하려고?
여튼, 오래 전엔 꽤나 임팩트가 강했던 이 문장이 다시 떠오른 것은 최근에 등장한 또 다른 ‘유령’ 때문입니다. 바로 AI, 그리고 그와 관련된 것들이지요. 물론 AI는 유령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고, 이제는 실체(피지컬)까지 갖추었을 뿐 아니라 실생활 영역에서 이미 자기 역할을 하지요. 그것도 어지간한 숙련생보다 훨씬 더 잘. 적어도 인간지능의 주요 두 기능인 생각(정보처리)과 그에 따른 판단(예측) 면에서 조만간 그 능력이 보통 인간을 추월하리라는 것만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다룰 수 있는(계산할 수 있는) 데이터의 수량 자체가 인간과는 차원이 다를테니까요.
그럼에도 현재의 AI에 대해 아직까지는 그다지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 큰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없던 획기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것이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할 것이란 경고로 인해 걱정과 불안은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대다수 사람들에게 AI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구(tool)'라는 인식이 자라잡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그랬듯, 그것들이 도구의 위치에 있는 한은 아무리 기능이 우수하고 편리를 제공해준다 해도 아직 그것을 쓸지 말지 선택할 권한은 인간에게 남아있는 것이니까요. 즉 우리는 여전히 우리 삶을 통제할 최후의 힘을 가졌다고 믿게 되지요.
한마디로 우리에게 지금과 같이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 즉 인간이 중심이 되는 원리라는 기본 ‘판’ 자체가 바뀌리란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었지요. 고작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인본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서 사실 그 이외 다른 세계의 기준이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인본주의는 그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시대, 즉 무작위한 자연선택의 ‘횡포’와 그에 맞선 무기력한 인간의 방패 역할이 돼주었던 ‘신(神)’, 전능할 뿐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절대적 존재에 대한 철통같은 믿음의 전통에 비하면, 뒤늦게 출발한 또 다른 한 축의 전통에 불과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은 ‘신’대신 ‘이성’을 주장했기 때문이고, 르네상스 기 한복판에서도 그 명성 높은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연금’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 또한 그가 지동설에 찬성함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각성은 한번 터진 둑의 구멍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법입니다. 인본주의는 여전히 위태롭지만 인류가 만들어낸 기본 판의 설계 중에 오늘날까지 가장 건재합니다(물론 신앙의 전통도 여전히 건재하지만, 절대적 권위가 무너진 것만은 사실이지요.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인간이 두뇌 양쪽으로부터 모두 지배를 받던 ‘양원시대’, 즉 개인에게 의식이 없던 시대에 우뇌 속에 각인된 신(죽은 왕)의 음성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던 시대가 끝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의식의 발달에 대해서도 나중에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 인본주의의 판을 기본 판으로 깔아놓기 위한 설계와 실험, 고민과 실행을 했던 당사자가 바로 고대인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인본주의는 인간을 (그 어떤 수단이나 목적이 아닌) 존재론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기본 정신, 즉 인간의 독자적인 생각과 판단, 경험과 성품, 능력은 물론 그의 현재의 소망과 꿈,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지향과 자유에 대해, 존중을 넘어 법적 보호와 이를 위한 사회 공동체의 의무와 협력까지 강제하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인본주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고대인들에게 처음부터 개인의 존엄이나 가치, 자유, 행복이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본주의 역사에서 고대인들이 담당했던 역할은 그들이 놓여있던 조건, 즉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본질의 탐구였지요. 가장 중요한 의문은 ‘죽음(언제나 죽음에 따른 의문과 공포가 인간을 짓눌렀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해 줄 듯한 신들과의 관계와 그들에 대한 질문(신화),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 앞서 공동체의 보전과 삶의 지속성 문제 등등(정치, 철학 ) ...
가장 철학적이면서도 가장 현세적이 됨으로써 이후 인류의 문명이 굴곡이 생겨날 수 있는 기본 무대를 제공한 것이 바로 고대의 세계입니다. 세계와 현실, 그 자체에 대한 질문과 탐구 정신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고대의 정신이자, 인간이 이성이 가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 몇 가지는 예측이 가능합니다. AI는 국경을 초월할 것이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거버먼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이미 그들만의 종교룰 만들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AI 산업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실질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될 거라는 전망도 이제는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그렇게 될 때 인간 개개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과학은 그 윤리와 파급효과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탐구하거나 논의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자들이 그 역할을 하려면 과학에 대해 더 해박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최근 AI들은 그들만이 소통하는 SNS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 수 없지요. 최근 그들(제가 이런 대명사를 쓸 줄은 몰랐지만)끼리의 대화에서 우리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무엇일까요? Human? Person? 사용자? 주인님? 질문자?
그들은 우리를 "The watcher" 라고 칭한다고 합니다. 관찰자일까요, 감시자일까요?
어쨌든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 1848년에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주의자동맹의 강령으로 삼기 위해 공동집필한 소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