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문학] 고대 문명 이야기<4부>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배우는 ‘민주공화국’의 기원

by 이진경

정치 이야기는 왜 종종 불편하고, 껄끄럽고, 확실한 입장을 드러내는 것 자체만으로 종종 '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걸까요? 그런 현상은 저에겐 마치 24시간 공기로 숨을 쉬면서도 그것 때문에 매순간 공기를 의식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해질까 저어하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순간 공기를 마시면서도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 건 공기가 늘 공급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정치의 문제는 공기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긴 합니다. 다른 사안에선 ‘입장’이란 것이 말 그대로 그 사안에만 해당되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정치에서의 입장은 종종 당사자의 총체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부분을 드러내는 데는 때론 적극적이기도 하지만 전체가 드러나는 건 원하지 않을 테지요.


그런데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과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따지고 보면 우리의 현 세계가 직접적인 폭력 상황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 역사가 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사건들 중 하나는 ‘폭력’이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그렇지요. 이를 가능하게 한 건 바로 인류사에서 일어난 ‘정치의 보편화’ 때문입니다.


정치의 보편화는 폭력(전쟁)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폭력의 ‘특화’를 의미합니다. 일단 정치는 폭력의 행사를 국가가 ‘독점’하기로 약속하는 방식으로 일상에 만연될 위험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지요(그렇지 않았다면 사적 복수가 만연했겠지요). 이 약속을 위반 혹은 위배하는 자는 공동체로부터 축출(감옥과 형벌, 사회적 지탄의 수순으로)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가 힘을 발휘하는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폭력의 ‘통제와 관리’ 패턴이지요. 결국은 수많은 욕망과 의지, 세력과 세력, 힘과 힘이 부딪치는 인간 사회에서 정치가 하는 일은 이처럼 폭력이 극히 '예외적 수단'이 된 자리에서 통하는 최소한의 정치의 기술, 즉 조정과 타협, 절충과 양보, 협상을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지요. 이 사회적 합의체제가 공동체의 가시적 질서로서 공식화되어 나타난 첫 사례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작은 단위의 도시공동체 조직(폴리스)들이 각기 독자적인 국가로 분립하여(연방이 아닌 개별 국가로) 공존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헬레네스(그리스인)'라는 하나의 동질감을 유지했던 매우 독특한 사회였습니다. 이는 동시대의 이집트, 인도, 중국 등 대부분의 고대국가들이 ‘제국(군사적 패권을 수단으로 수하에 여러 국가를 거느린 거대 국가체제)’의 형태를 취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특징이지요.


폴리스의 등장은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표적 폴리스는 아테네, 스파르타 정도지만 그 외에도 코린트, 테베, 테살로니키, 사모스 등, 많을 때는 수백 개에 달했고, 이들 간에는 때로는 대립하며 전쟁도 불사하지만 필요할 땐 서로 연합하는 등 변화와 부침이 병존했지요. 이처럼 ‘하나의 그리스’를 형성면서도 서로 독립적인 작은 단위의 국가로서 서로 방해받지 않고 공존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특성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폴리스 별로 다양한 정치실험의 무대가 펼쳐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각각의 폴리스들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지며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구축하면서도 서로 영향을 끼쳤는데 그런 와중에 폴리스 전성기인 기원전 5세기 무렵 여러 모로 발군의 면모를 보인 아테네에서 민주주의, 그것도 '직접 민주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지역이 작고 최대 인구가 1만명 이하였기에 가능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스가 이처럼 다양한 체제 실험이 가능한 작은 단위의 폴리스 구조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지형적 특성 때문입니다. 지도에 나타나듯 그리스에는 넓은 평야보다는 산으로 가로막혀 분리된 크고 작은 땅들이 많고, 바닷길을 따라 분산된 섬들 또한 많았습니다. 자연적으로 고립된 이 지역들이 각기 다른 폴리스 성립을 가능하게 했지요. 하지만 그리스인들 특유의 이성을 중시하는 현세적인 태도가 정치적 합리주의를 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참정권을 동등하게 인정하면서 실제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 제도의 역사적, 정신적 기원을 이룬 것만은 분명합니다.


(* 이하 보라색 문단은 아테네의 민주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건너뛰어도 무방합니다) 우선 아테네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이자 광장인 ‘아고라’에 모이는 아테네인들은 평등하게 정치적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시민권’을 부여받았지요. 그렇지만 이때의 시민은 실제로는 폴리스 출신의 성인 남성만을 의미했기에, 이방인과 노예, 여성과 아이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전체 인구의 10~20%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제한적이고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으론 시민의 규모가 작았기에 오히려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가능했던 측면도 있지요.


아테네 시민들은 제도적으로 마련된 입법, 행정, 사법 기구를 통해 실질적으로 폴리스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모든 시민은 최고 의결기관인 ‘민회’에 한 달에 4회 참석하여 정치적 발언, 투표, 입법, 예산 결정, 전쟁 선포 등 주요 정치적 결정들을 직접 수행하였고, 그보다 소수로 구성된 평의회가 민회를 보좌하면서 민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행정업무를 맡았고, 그 외 사법기관으로 민중재판소를 두었지요. 특이한 점은 예외적인 선출직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공직자들을 돌아가면서 추첨으로 선발하였다는 점입니다. 아테네 시민 모두가 한번 이상은 공직을 담당할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이지요(품앗이 민주주의라고 해도 될듯). 아테네인들이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나 중히 여겼는지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높은 권한을 지닌 인물에 대해 투표로 10년간 추방하는 제도를 별도로 운영한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을 정확히 꿰뚫어 본 아테네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리스어로 ‘사적 private’이라는 말은 ‘공적인 것의 부재’를 뜻하는데, 인간의 특성 중에서도 동물적이고 저급한 면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지요. 그리스인들이 공적인 삶과 공적인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스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사실 모두 공적 인간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아테네 시민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고라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누구나 정치의 수단인 ‘말’로써 연설과 토론을 벌였고, 길목마다 서로 다른 철학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백화점 세일처럼 ‘고객’의 이목을 끌려는 듯 앞 다투어 선전전을 벌이는 풍경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광장은 오늘날의 '온라인' 역할도 했습니다. 폴리스의 모든 정보들과 인적 네트워크가 모인 곳이었으니까요. 믿거나 말거나 아테네인들이 모인 활기차면서도 고상한 광장의 풍경을 담은 명화들이 상상의 산물만은 아닌 듯합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로마의 공화정은 현대 민주공화정의 두 기둥을 이루는 정치철학이자 제도이지요. 민주주의가 주권이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 개개인에게 평등하게 존재한다는 이념에서 출발한다면, 로마가 아꼈던 공화정은 권력을 독점하는 왕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정은 공화정이라는 바탕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담은 말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생래적으로 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경계했던 듯합니다. 군국주의 성향이 강했던 그리스의 스파르타는 왕정을 유지하면서도 특이하게 두 명의 왕을 선출하여 일인자의 전횡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지요. 로마는 공화정이 끝나고 제국이 된 후에도 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접지 않았습니다. 공화정을 구현하는 방법에는 민주주의도 있지만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과두정, 귀족정치까지 포함되지요.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민주주의와 공화정이라는 간판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진정으로 염원했던 것은 '귀족 정치'였다고 말합니다. 다만 여기서 '귀족'이란 출신이나 부(富)가 아닌 인간적 '탁월함(Arete)'으로 빛나는 진정한 ‘엘리뜨’를 의미합니다. 핵심은, 현실에 대한 냉절한 인식과 지성을 강조하는 가운데에서도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이 가진 특유의 인간 정신과 품성을 높이 사는 경향, 인간과 사물이 가진 가장 '우수한 측면'을 찬양하고 장려하려는 태도, 그 자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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