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 外전: 궁금한 건 못 참아⑥]

의회민주제* 국가 영국엔 왜 왕족이 존재할까 - '로마 공화정’ 이야기

by 이진경

오래전 런던을 여행할 때 영국 역대 왕실의 소장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인듯). 화려함과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실 장식품들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쑤시개 수준의 사소한 생활 도구조차 그 세공이 요즘 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런던에서 보았던 것들 중에 그보다 좋았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 잊혀졌건만, 이 글을 시작할 때 새삼 그 박물관이 떠올랐던 이유는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 진귀한 보석들의 잔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입으로는 연신 감탄사를 내지르면서도 속으로는 이상한 불쾌감에 욕(?)을 하면서 관람했던 기억이 나서지요.


' 이런 물건들을 매일 쓰고 사는 사람들 눈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저 화려한 궁중생활을 유지하는 데 식민지 백성들의 고혈이 얼마나 들어갔을 거야?'


지금 생각하면 전시품들은 그것들대로 그냥 감상할 만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알량한 역사 지식에 기초한 역시나 어설픈 정의감에 불타올랐던가, 아니면 그저 괜한 객기로 그랬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아무리 한 시절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명성에 자부심을 가졌다 해도 과거 최고위층이 누렸던 ‘화려·사치함’의 극치를 일부러 전시까지하면서 감상하는 것도 모자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듯한 영국인들의 정신문화가 한동안은 좀 실망스럽긴 했지요. 수준 높은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나라로 알려진 영국에서 말이지요.


적어도 교과서에서 배운 영국은 어떤 나라냐 하면, ‘대헌장’ 즉 ‘마그나카르타’(1215년) 선언으로 법치주의와 의회제도 확립에 불을 댕긴 나라이고, 1688년엔 ‘명예혁명’으로 왕(제임스 2세)을 축출하고 시민의 권리 보장을 강화했던 소위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 중 하나였지요.

그런 나라에서 여전히 (비록 실질적 권력은 없다해도) 왕실을 보위하는 각종 의전과 권위의 전통이 진지하게 계승될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왕실가의 일거수일투족이 무슨 셀럽연예인의 근황처럼 회자되고 때로 비운의 왕가 소식에 일부에선 감정적 동일시까지 일어나는 현상을 볼 때면 고개가 갸우뚱 해지곤 했지요.



민주주의가 성숙한 단계에 이른 현대국가이지만 동시에 왕실 전통에 진심인 영국의 ‘이상한’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문은 뜻밖에도 로마 공화정을 이해하면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공화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현대 정치와 민주주의를 더 깊게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공화국 혹은 공화정을 뜻하는 Republic은 라탄어 res(것) + public (공공의)의 합성어로, 국가의 주권이 기본적으로 ‘공공의 것’이라는 대원칙을 일컫는 개념이지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한 이 공화정의 구현 방식에는 흔히 생각하듯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과두제, 귀족정치, 심지어 왕정까지도 포함됩니다. 어느 누가 주권 행사를 담당하든 민의의 총화를 통해 합의한 법치주의에 근간하여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치가 핵심이지요. 그런 점에서 절대군주제가 아닌, 헌법에 기초하여 부여된 권한을 갖는 왕을 옹립하는 체제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입헌군주제’라고 합니다.


대략 1500년간 유럽과 북아프리카, 서남아시아에 걸친 영토를 지배했던 로마제국은 그때그때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왕정, 귀족정, 과두정을 모두 거치긴 했지만 언제나 중심에는 이상적 공화국 건설의 꿈이 있었지요.

로마의 공화정은 왕정, 귀족정, 민주정이 사실상 혼합된 정치체제였습니다. 각각을 대변하는 ‘집정관’, ‘원로원’, ‘민회’가 서로 맞물려 절묘하게 권력 분산과 견제를 수행하는 체제였지요. 로마의 공화제를 살펴보면 로마인들이 권력에 대해 얼마나 현실적인 이해를 하고 있었는지, 마케아벨리가 왜 로마의 공화정을 칭송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은 선의나 추상적 원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등한 다른 힘에 의해서 다스려진다고 믿었던 듯합니다. 군주정에는 절대권력의 위험이, 귀족정에도 소수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권력 점유로 인한 패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어리석은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의 위험성을 염려했지요(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어리석은 다수의 결정 때문에 잃었다고 생각해서 민주주의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평등한 교육권과 시민성 함양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하지요 ).

로마의 공화정은 이러한 권력의 여러 위험요소들을 권력분산과 상호 견제를 통한 균형을 통해 해소하려 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말처럼, 이상처럼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 핵심원리는 현대 정치에 고스란히 적용되지요. 견제와 감시, 균형과 조화 등등의 익숙한 말로... (그렇지만 그리스나 로마 모두 가능하다면 지혜롭고 탁월한 소수 엘리뜨 집단이 정치를 이끌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 엘리뜨 집단이 언제까지고 철저하게 공적 마인드를 관철한다는 전제 하에서겠죠.)


다시 영국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영국은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의 나라입니다. 다만 왕의 독단과 왕정의 폐해를 막기 위한 견제 장치로서 ‘의회’가 오랜 동안, 때론 투쟁을 통해 때론 타협을 통해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해왔지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의회는 종종 거대한 민의의 힘을 빌어야 했고, 그에 따라 주요 정치혁명(혹은 혁신)과 민주주의의 성장이 뒤따랐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국의 왕가 전통에는 단지 구시대의 산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로마 공화정으로부터 기원하는 복잡다단한 정치게임의 함수관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왕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 국민들의 정신적, 문화적 요소이자 통합의 구심이 되기도 합니다. 실권은 없어졌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왕정이 존속하는 나라들의 경우, 왕족의 존재가 오히려 독재정권을 허용하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정치적 안전판이 되기도 합니다. 왕족의 승인 없이 정권을 찬탈하는 건 다수 국민들에게 명백한 반역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민주주의 체제는 언제든 독재정권에 의해 단번에 무너질 수 있지요.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정치는 매우 복잡한 권력 게임의 측면을 가지고 있고, 나라마다 각기 다른 역사적 내력이나 처한 상황만큼 다양한 듯합니다. 로마 공화정을 살펴보면서 한편으로 왕정은 무조건 구악, 민주주의는 무조건 선이라는 식의 논리로 정치를 단선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도든 법이든 중요한 것은 모든 상징질서들은 인간을 위해 집단적으로 고안된 것이고, 언제든 실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과의 상호연관성과 복합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 영국의 정치체제는 보통 의원내각제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차용한 명칭이고, 영어인

'Parliamentary system' 을 그대로 번역하면 의회에 의해 정부를 구성한다는 뜻의 '의회제'가

가장 정확하다.


작가의 이전글[과학하는 인문학] 고대 문명 이야기<4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