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문학] 고대 문명 이야기 <5부> 신화/철학/ 현실관
개인적인 얘기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적절한 텍스트를 찾기 못해 교재 없이 강의를 진행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관련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중엔 좋은 책도 많지만, 이상하게도 '이거다' 싶은 책을 아직은 찾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요.
사실 고대 문명을 다루는 책들의 주 내용은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내용을 예외로 하면)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학문이란 크게는 ‘과거 경험의 본질을 살피는 일’과 그에 기반해 ‘현재나 미래를 진단 혹은 예측하는 일', 두 가지 방면에서 현실에 기여하게 마련인데, 인문학은 확실히 전자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대 문명은 ‘해석이 진행 중인 미완의 담론’이라기보다는 이미 대체적 윤곽과 본질이 규명되어, 어느 정도는 완결된 학습 콘텐츠로 공유되는 이야기입니다. 방대한 내용을 의미 있게 선별, 압축적으로 재구성한 기본 줄거리가 있고, 거기에 어느 정도 합의된 해석과 규정이 제시되어 있어 경험해보지 못한 고대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공통된 감각과 인상을 갖게 되지요. 이처럼 과거의 한 시기나 문화를 특정한 경향성에 기초해 통일된 시각으로 이해하고자 바람은 가르치는 입장이나 배우는 입장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선행된 해석에 갇히면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점 또한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시기를 설명하는 여러 ‘양각(陽刻)’된 용어와 관념 들, 즉 ‘민주주의’, ’철학‘, ‘지혜’, ‘탁월함’, ‘영웅’ ‘명예’와 ‘품위’ 등을 통해 그 시대의 보편적 특징과 개성을 비교적 분명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고대는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얼굴과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성적이고 현실 지향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이데아(본질, 진리)를 추구하는 경향성이 하나의 얼굴이라면 그와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또 다른 경향성 또한 거의 같은 비중으로 통합해서 바라보아야만 고대라는 얼굴이 더 완결된 모습으로 드러나지요.
가령 올림포스 12신들의 대책 없는 '필살기'에 드러나는 온갖 욕망과 정념의 원형들(그리스-로마 신화), 혼음과 ’환각적‘ 카오스가 난무하는 디오니소스 축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수용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 등 또 다른 차원에서의 현세적 자유분방함과 파토스(pathos: 격정, 열정, 노여움 등 일시적 정념)적 관념들이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또 다른 핵심 줄기입니다. (저의 경우, 아마도 고대 문명과 관련된 이처럼 다양하고 다층적인 특성들을, 개별 사안별로 잘 정리한 것과는 별도로, 전체적으로 잘 종합하여 전달하는 책을 찾다가 결국은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 모습과 속살은 아주 딴판일 때도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모두 한 몸이라는 사실이지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드러난 고대인들의 초상은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합니다. 서로 다른 경향들이 혼재합니다. 때론 모순적이기까지 하지만 왜곡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저 입체적인 모습을 이루는 여러 분면일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 외에도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참으로 어떤 인간들이었는지 이해해보려 여러 각도에서 용을 쓰다보면 결국 경계가 애매하게 커진 이야기로 빠질 위험이 있지만(어쩌면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그 애매한 경계를 견디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고대의 속살을 좀 더 가깝게 들여다 보기 위해 그 '위험'지대의 경계를 최소한으로 조절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가장 특징적인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신화 속에 드러난 그들의 신관과 세계관, 그로 인해 파생되는 현실관입니다.
고대라는 광범위한 시기 안에서도 과거로 올라갈수록 분명해지는 점이 하나 있다면 인간이 신에 더 가까웠다는 점일 것입니다. 확실히 신들이 위력을 행사하는 시기였지요. 요즘 시각에서 보면 정령과 주술, 미신의 시대이고, <<의식의 기원>>이라는 유명한 학술서에 따르면, 생물학적으로 우뇌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학술적 관점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의식과 언어를 담당하는 좌뇌가 발달하기 이전 인간의 우뇌에는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죽은 왕의 훈계적 목소리가 집단 최면처럼 무의식에 새겨졌고, 이후 한동안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지배하는 신의 음성을 반복적으로 직접 듣게 되었다고 하지요. 물론 이 시기의 신은 종교적 의미의 신이 아닌, 죽은 왕을 의미했고, 현실생활에 (음성을 통해) 직접 개입하는 실제적 힘이었지요. 이 말은 인류가 오랜 동안 '의식'이 생겨나기 이전 단계를 지나왔고, 이 시기의 뇌를 점령한, 무의식적이지만 무언가 자기 지배적인 '신비한' 힘(신)에 좌우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같은 저서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는 이 신들의 세상으로부터 ‘인간 세계’가 분화해 나오는 첫 번째 기점이 됩니다. 더 이상 내적인 신의 음성이 현실 세계에 통하지 않을 만큼 인간들의 세계가 커지고 복잡해졌기 때문이지요. 무의식에 깃든 신의 음성 대신 복잡다단한 현실에 더 적절한 수단으로 출현한 것이 바로 ‘의식’, 그 중에서도 현실세계와 호한성이 높은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그 전환기의 모습이 드러난 전형적인 예라고 하지요.
영웅들은 행동을 개시하기에 앞서 반드시 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신의 계시 없이는 이야기 전개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이 신들의 빈번한 출현을 현대의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문학적 상징 장치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최초 서사 문학인 <길가메시>를 비롯해 고대에 등장한 모든 문학작품들은 같은 형식을 띱니다. 신들의 음성은 매순간 인간의 행위를 이끌어내고 정해진 운명으로 이끌지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실제로는 문학적 상징이 아닌 현실을 그린 걸까요? 좀더 과장하고 문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었을 수는 있지만 혹시 현실 인간세계에서 실제로 힘을 발휘했던 일종의 무의식의 심리적 패턴은 아니었을까 의심해 볼만 한가요?
분명한 점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너무나 오랜 기간 뿌리 깊은 유대로 묶여있어 단번에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혹은 심리적 유산인 신의 존재를 높은 곳에 있는 ‘신전’에 고이 안치했고, 더 아래 쪽 땅으로 내려와서 ‘이성’의 감각으로 합리주의에 눈을 뜬 ‘실재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처음으로 위쪽 신들의 장소와 아래쪽 인간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세상으로 나뉘어 조화를 이루게 되지요.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유니버스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자연의 재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하학과 천문학을 연구하고, 공동체의 보전을 위해 정치와 민주주의를 고안하고, 신과 세계를 ‘이성’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철학’이 영역을 확립했지요.
물론 그들은 여전히 신들의 존재를 믿고 복종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들의 세계에 접속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이전엔 신이 어디에나 편재했다면 고대 그리스에선 필요시 신탁을 통해서만 접촉) 신들이 물러난 자리에 드러난 현세의 삶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지요. 때론 그들은 현대인보다 더 현세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Carpe diem!'을 외치면서 현생을 즐기는 것이 지상최고의 가치인 듯 찬양하다가도 어느 순간 매섭게 ’Memento mori!’(필멸자임을 잊지 마라)를 외치며 삶의 허비하지 말라 경고했지요.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신들의 위력 앞에 여전히 굴복하면서도 실재세계에 눈을 떠, 짧은 현세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음을 알게 된 고대인들의 분열된 심리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묘사하는 신들은 두렵기만한 절대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너무 변덕스럽고 아이처럼 감정의 통제에 무심하며, 도덕관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요. 그렇지만 그 신들이 결정한 인간의 운명은 여전히 절대적이고, 인간은 ‘비극’으로 무력함을 위로하고 달랠 뿐입니다. 신들에게 도덕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불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을 필요가 없지요. 오로지 (도덕과 명예보다 더 갈망하는) 자유롭고 분방한 삶, 어쩌면 그리스인들이 진정으로 원했을 바로 그 삶을 살아가면 되는 존재들이지요. 그런 점에서 (그리스 신화는 로마로 계승되어 원본을 기초로 수차례 그리스-로마 신화로 다시 쓰이곤 했는데), 저에게는 그리스-로마 신화야말로 신성(神性)을 빌어서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 잠재돼 있던 격정과 삶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될 정도입니다. 프로이트가 고안한 심리학 용어에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이 유독 많이 차용되는 건 단지 프로이트가 개인적으로 신들의 이야기를 선호해서는 아니겠지요?
∝ <고대 문명 이야기> 남은 글 싣는 순서 ∝
- <6부> 신성과 이성, 욕망의 다층적 스펙트럼 II
- <7부> 글을 마치며: 못다 한 이야기
( ※ 세부 타이틀은 수정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