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문학] 고대 문명 이야기<6부> 신화, 철학, 현실관
고대 그리스의 미술분야에 ‘쿠로스(kouros)’라는 미소년 조각상이 종종 등장합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코레(kore)’라는 소녀상도 있지만 쿠로스야말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예술양식중 하나로, 특별히 어떤 예식이나 기념표지 목적으로 제작되는 데 그치지 않고 순수 미술품으로도 널리 유행했지요.
쿠로스가 유독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젊고 건강하며, 특히 남성적이면서도 묘하게 여린 느낌을 주는 미소년 육체의 아름다움, 미숙하지만 때묻지 않은 영혼의 풋풋함이 주는 매력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이집트의 인물 조각상들이 대체로 얼굴의 개별성에 초점을 맞춘 딱딱한 입상이라면 쿠로스는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균형, 그리고 자연스런 동작을 통해 표현되는 감각적이고 생생한 미(美)를 추구했다고 하지요. 여기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일반적 미의식, 다른 말로 취향과 기호가 반영되어 있기도 합니다. ‘보기 좋고 예쁜 것, 세속적으로 근사한 것에 끌리는 젊은 층들의 ‘키치적 성향’이라는 말로 언급되기도 하지요. 키치란, 본질적이고 심오한 성질보다는 대중적이고 일상적이며 상업적인, 대체로 세속적이고 가벼운 문화적 취향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지요. 미소년을 대상으로 한 쿠로스가 인물의 내면이나 심층보다는 표면적, 감각적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만은 사실이겠지요. 그리스 사회는 실제로 ‘외모지상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생의 삶보다 영원불멸의 사후세계에서 본질을 찾았던 이집트인들은 현세의 매력에 빠진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성향을 두고 ‘위대한 과거를 잃어버리고 영원한 젊음에 갇혀버렸다’고 폄하했지요. 한편 그리스를 ‘멋지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이라고 표현한 작가도 있습니다.
한편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일체화된 문명으로 묶어서 보는 일반적 방식과 달리, 일각에선 그리스와 로마는 엄연히 다른 개성을 보인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리스가 전반적으로 ‘근사함을 쫓는 젊은 이상주의자’의 모습이라면 로마제국은 노회한 경험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인 중년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이지요. 오랜 전투에서 단련되고 지친 몸, 거친 주름, 그러면서도 젊고 세련된 그리스의 젊은 문화를 너그럽게 수용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거를 것은 거르는 유연한 어른의 면모를 보여주지요.
고대 문명 속 이 두 얼굴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얼굴일까요, 아니면 한 몸속에 구현되는 연속선상의 자연스런 흐름과 변화의 과정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유년기 없이는 성년기 또한 없을 터이니, 그리스와 로마 문명사 안에 어떤 연속과 단절이 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로 살펴보아야 겠지요. 다만 근원적으로 공통된 뿌리에 대해서는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그리스의 신화시대로 돌아가 볼까요?
물리법칙의 세계에서는 초기 조건이 사실상 이후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모든 구조를 결정하는 근원적 요소로 작용하지요. 인류에겐 신과의 관계 설정이 바로 그 초기 조건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신들을 신전에 모시고, 신탁을 위한 별도의 자리로 삼았다는 사실은 언뜻 보면 여전히 신들에게 충실하게 복종하는 삶의 연장인 듯하지만 한편으론 본질적으로 중대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신이시여, 이제 우리 필요할 때만 따로 만나요.' 라는 싸인이지요.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신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택했던 것입니다. 불경을 저지르는 듯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자 ‘타협’입니다. 신들에게 복종하며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세의 문제들은 더 이상 신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알아바렸기 때문이지요. 부모 곁이 아무리 안온하다고 해도 아이들은 결국 그 품을 떠나야만 어른이 되기 마련입니다. 청년이 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살아야 할 현세에 맞는 ‘뉴노멀’을 택했다고 봐야지요.
‘신들이시여, 이제부터 이곳은 인간들이 어떻게든 해나갈 테니, 노여워 말고 그 높고 성스러운 곳에서 불멸의 불꽃으로 우리를 굽어 살펴보시다가, 올림포스 축제가 열리는 때에 우리 다시 만나 지난 회포를 풀어보아요.’
하지만 축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약속은 시간이 지나며 빛이 바래기 마련. 세속의 세계가 확장될수록 신들과의 거리는 약속보다 더 빨리, 더 멀어집니다. 마침내 로마공화국의 시인인 티투스 루크레티우스 카루스(BC 99~BC 55)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이르면(과학적 세계관을 담은 당대 가장 충격적인 철학적 서사시이자 최초의 현대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후대 유럽 인문학자들이 앞다투어 헬레니즘 권 전체를 순례하며 찾아다녔던 오랜 금서 중 하나) ‘신들은 인간사에 전혀 관심이 없고. 인간이 하는 어떤 일도 신들의 분노를 사거나 신들의 개입을 불러오지 못한다’고 일갈하기에 이릅니다. 작자 자신은 부정했지만 사실상 ‘무신론’의 신호탄이 되지요.
그런데 물리법칙의 세계 안에서 모든 작용에는 그에 대한 반작용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스인들의 신과의 거리두기는 고대 이후 천 년 간 이어지는 강력한 유일신의 시대라는 ‘반작용’을 불러오지요. 익히 아는대로 유럽 전역을 지배한 ‘중세’ 기독교 문명이 고대의 다채로운 유산을 (일시적으로) 지워버리고. 모든 면에서 고대의 정신적, 문화적 관용과 개방성이 사라진 시대라 평가되는, 단일한 세계를 열게 되지요.
신들과 인간세계의 질기고도 모진 인연이 계속되는 데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 그 관계를 끊는 ‘위대한’ 단절은 중세가 끝나고도 몇 백 년이 더 흐른 뒤, 우리에겐 너무 친숙하면서도 낯선 한 철학자에 의해 선언적으로 이루어지지요.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입니다.
신의 부재를 초기 조건으로 상정하면 ‘영웅’에 대한 열광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그리스적 이상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신의 부재로 생겨날 혼란과 불안을 그보다 더 잘 대체할 관념이 있을까요? 이제 그리스인들은 ‘탁월함을 지닌 영웅이 이끄는 세계‘라는 관념적 안전판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해야 합니다. 부모 혹은 선생님이 사라진 세계에서 스스로 답을 찾는 아이처럼. 그리스인들에게 철학은 그 방법의 하나가 아니었을까요?
모든 것에 대한 '회의(진리로 입증되기 전에는 결론이나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야말로 그 시기에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의 하나지요. 미지의 상황 앞에서는 의심하고 한발 물러서는 자가 더 생존에 유리합니다. 모든 것이 명확히 입증되어 진리로 드러날 때 '지식(에피스테메)'이 생겨나고, 그 자식을 활용해 내가 어떻게 살아남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이 '지혜(소피아)'라고 한다면,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의 철학(philosophy)이란 말은 결국 삶의 행로와 무관하지 않지요.
다만 그리스에서 철학의 기원은 ‘자연철학’ 즉 자연과 세계에 대한 객관적 탐구에서 비롯됩니다. 직전까지 믿고 있던,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전제만으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자연철학에서는 이 세계가 무엇으로(물, 불, 공기, 혹은 원자 등등)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탐구로부터 출발합니다. 과학과 철학은 이처럼 원래 동일선상에서 출발했고, 그런 이유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자 혹은 천문학자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근대에까지 이어졌고,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트는 철학자이자 과학자(천문학자)인 마지막 인물이 되지요.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크게 한번 틀어버린 인물입니다. 철학의 대상과 질문을 바꾸어, 인간의 문제, 삶의 차원으로, 즉 천상에서 땅으로 철학을 끌어내린 장본인이지요. 제자인 플라톤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이 세계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불멸의 ‘진리(이데아)’의 세계를 설파합니다.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 현상 너머의 본질이 무엇이냐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의 탄생이고, 이 이원적 관념이 사실상 지난 2천년이 넘도록 주류적 사고로서 전 세계 현대인들의 사유체계의 기본 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리스 철학은 다양하게 분화된 세계관들을 제시했고, 이후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세분화될 때마다 철학은 여러 갈래로 하위 학문들을 독립시키면서 차츰 경계가 구체화되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해도 그 본질을 완벽히 알 수 없는 ‘물자체’ 라는 개념으로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 칸트에 의해 철학의 영역이 다시 한 번 ‘축소’되고, 니체에 이르면 이전 철학이 근본부터 부정되는, 모든 철학은 그저 개별 철학자 자신의 주장일 뿐이라는 ‘주관주의’ 라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철학이 인문학 분야에서 상위를 점하고 있다면 아마도 철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의 사유세계 안에서 요동치는 유연함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학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 조응하여 자유로운 사고의 춤으로 새로운 관념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것은 다시 현실을 직조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결론은 아닙니다만, 고대 그리스가 인류문명 초기라는 ‘백지’상태에서 출발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행운인 측면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누구든 백지에 처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자유롭게 무엇이든 그릴 수 있지요. 지우고 다시 그리는 여유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무엇이든 용인할 수 있는 관용과 거침없이 회의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는 이점이 생겨나지요.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를 이제 막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한 ‘미소년’에 비유하는 것이 아주 틀린 건 아닌 듯합니다. 우리 개개인이 백지 상태였던 유년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떤 편견도 왜곡도 없이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맛보고, 느끼고, 상상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예찬하는 고대의 우수성은 사실 고대가 지닌, 초기설정 시대의 이점에 기댄 탓일지도 모릅니다. 회의와 관용의 정신 안에서 가능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적 산물들 중 그럴만한 이유를 가진 것들이 현대를 지탱하는 수많은 관념들 속에 살아남았겠지요.
분명한 사실은 미성숙하지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어린’ 고대인의 후손으로서 우리는 이미 앞서 그려진 그림의 구도를 완벽히 뒤바꾸는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백지로 교체하지 않는 한. 그것이 시간을 거슬러 하나로 연결돼 있는 인류의 운명이고, 인문학이 여전히 과거를 탐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