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인문학]
나를 위한 기하학(幾何學) <1부>

by 이진경


누리호 4차 발사 장면을 뉴스화면으로 보았습니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치솟은 발사체가 1, 2, 3단 순차적으로 분리되어 마침내 주탑재위성과 큐브위성이 우주의 깊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살짝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기술문명에 대한 생각은 제각각이겠지만 지상에서 우주까지 총 18분 남짓 짧은 시간 동안 인류 안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열망과 집념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속력의 압도와, 마침내 그 속력의 힘이 중력이라는 절대 속박을 뚫는 순간의 희열 같은 것이 교차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소망, 꿈, 열망 등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들에는 뭐랄까,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곤 합니다.


본업이 인문학 강사인지라 두 번째 글은 초기 인류 이야기로 시작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누리호’ 발사 장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예전부터 언젠가 한번은 정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주제에 대해 쓰기로. 그건 바로 이 ‘세계’의 전부를 조망해보는 일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의 경계를 가능한 모두 스캔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그 안에 어디쯤 위치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누리호는 기껏해야 지구 주위를 도는 위성일 뿐이지만, 저는 더 멀리 나가보겠습니다. 직접 나가볼 수는 없으므로 ‘기하학’이 필요해지는 순간입니다.


기하학은 일반적으로 공간에 있는 것들의 모양, 치수, 상대적 위치 등을 연구하는 수학의 기초 분야입니다. 수(數) 개념이 나오기도 전의, 일명 ‘형태 수학’이라 불립니다. 그런데 기하학은 특히 서양 전통에선 사실상 모든 학문의 기초이고 지식의 최초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 간략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기하’의 뜻은 모양이 어떤가, 혹은 (길이, 넓이 등이) 얼마나 되냐, 라는 뜻입니다. 잠시 우리가 이 세계에서 처음 눈뜬 최초의 인류라고 가정해볼까요? 세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기본적으로는 큰 것, 작은 것, 둥근 것과 네모난 것, 하나인 것과 여러 개인 것들이 쉽게 구분이 되겠지요. 하늘과 땅은 각각 위와 아래 있는, 한 덩이의, 큰 것이고 그 사이 세로로 길쭉한 나무들은 여러 개로 보입니다. 하늘은 그 끝을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둥글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았을까요? 반면에 땅은 울퉁불퉁하지만 네모이거나 세모로 보일지 모릅니다. 숲은 하늘과 땅보다 작고, 호수보다는 크고 등등. 세상에 대한 이와 같은 직관과 시각 이미지는 바로 인간이 세상에 대해 알게 된 최초의 지식이자 정보입니다. 기하학은 다르게 보면 인간의 시각에 비친 자연의 패턴에 관한 학문입니다. 자연의 구조를 알아야 생존할 수 있으니까요. 과학이 발달하기 전의 옛날 사람들에게 이 패턴을 설계한 사람은 신이었을 테고, 그런 이유로 기하학은 금세기 직전까지도 단순한 수학이 아니라 종교, 철학, 천문학, 미학에까지 두루 관련되어 신의 비밀을 푸는 신성한 학문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기하학은 또한 측량하는 학문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큰지, 거리가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높은지, 어떤 비례로 나뉘었을 때 가장 아름다운지까지도. 그런 이유로 고대에는 측량의 지식을 가진 자가 곧 권력자였습니다(주로 식량과 땅을 분배하는 일이 그들의 일이었지요). 오늘날에 기하학은 점, 선, 면, 도형, 공간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형의 원리, 수식을 알면 우주에서 아무리 큰 것도 그 비례를 이용해 측량할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이제 이 세계의 규모를 측량하고 내가 그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해석이나 통찰이 아닌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좌표로만 이해해보겠습니다. 여기에도 인식 가능한 범위와 그렇지 못한 범위로 나뉩니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일단 인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에서 시작해보겠습니다.


누리호 같은 위성에서 보면 지구가 보이겠지요. 지구의 둘레는 4만 km입니다. 반지름은 6,334Km이지요. 이 정도 길이는 실감이 잘 안되기 때문에 미터로 환산해보겠습니다. 지구 둘레는 4천만m, 반지름은 6백3십3만 4천m 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인 해발 8,850m와 비교하면 좀 실감이 날까요? 어쨌든 지구 둘레를 실제로 측량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수학이 대신 그 일을 수행했겠지요. 우리는 그 정도의 둥근, 구체 행성 위 표면의 특정 국소 영역에 무리로 흩어져 사는 존재입니다. 현재 나와 같은 인간의 수는 총 80억 명이 넘었죠. 지구 정도는 그래도 횡단이 가능합니다. 이 지구 둘레를 비행기로 한 바퀴 도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이틀 간 쉬지 않고 비행하면 된다고 합니다.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비행사가 지구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 바퀴 돌아보고 싶다면 1시간 반 정도 우주비행이 지체될 걸 감안해야 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은 어떨까요? 빛은 1초에 지구 7바퀴 반을 돕니다. 빛은 초당 3억m(30만 km)를 가지요. 언제나 일정합니다. 빛의 속도를 아는 것은 앞으로 나올 더 큰 범위를 측량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식 가능하지 않고 측량도 할 수 없는 너무 큰 크기나 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얻은 답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언제나 일정한 상수인 빛의 속도를 알면 거리가 나오지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너무 큰 세계와 너무 작은 세계는 수학으로밖에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의 속도를 기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직 지구도 못 벗어났는데 벌써부터 지칩니다. 아쉽지만 일단 오늘은 앞으로의 너무 너무 광대한 미지의 공간 스캔을 위한 준비운동이라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강조하면, 이제부터는 수학으로 공간의 규모를 이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빛의 속도! 빛의 속도를 기억해야 합니다. 빛이 초당 30만km, 1초에 3억 미터를 달린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내가 존재하는 이 세계의 규모를 미약하나마 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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