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개편된 하버드 교양 수업 커리큘럼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버드가 꼭 정답은 아니지만 본업과 관련된 관심 주제라 참고할 만은 하지요. 학문의 주요 방식이 고전 해석에 기반한 인문학은 종종 낡은 학문으로 취급되기 쉬워서 더더욱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에 민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인문교양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정신’과 ‘도덕’ 분야였지만 21세기 교양수업의 하나로 ‘지구사’와 ‘빅 히스토리(전 우주의 역사)’가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물론 그 외에도 여러 최신 주제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얘긴즉슨, 전 세계가 거의 동일한 1일 생활권에 들어온 글로벌 시대를 지나면서 각 국의 차별적 역사가 드러나는 ‘세계사’보다는 이제 지구적 관점의 사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날 과학의 성과들은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서 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지평으로 확실하게 떠오른 듯합니다. 이는 그동안의 인간 인식의 전반적인 확장이 가져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인식이란 한번 넓어지면 불가역적이지요. 세상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의 인식의 변화를 통해 비로소 더 명확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의식의 확장으로 물리적 시공간에 대한 이해 또한 확장될 수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사고해보는 일 역시 인문학의 중심 주제입니다. 철학에는 심층적 사고 뿐 아니라 무엇을 사고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 역시 포함되니까요.
서론이 너무 거창해진 느낌입니다만, 우리를 한정짓던 기존의 경계를 한단계씩 넘어서면서 새로운 기하학적 그림(원천적 지식)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선 새로운 조망에 필요한 기하학적으로 확장된 틀을 간략히 제시해보는 것에 그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중력이라는 감옥의 간수를 따돌리고 조용히 지구를 탈출해보겠습니다.
우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사실 지금 우리가 있는 모든 곳도 우주에 속하긴 합니다만)지구와 우주를 굳이 나누는 기준선을 ‘카르만라인’이라고 합니다. 지상에서부터 100km 지점으로, 우주의 시작점인셈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정해진 듯합니다(저기, 여기서부터는 우주복을 입으세요, 하는). 에베레스트 산을 11개 반쯤 쌓아놓은 높이입니다. 카르만라인을 지나쳐 500km를 더 올라가면 얼마 전 새로 합류해 궤도(600km 상공)를 도는 누리호와 마주칠 수도 있겠군요. 안녕, 누리호! (오글거리시는 분들 한정, 사과드립니다 --;)
우주는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다’고 합니다(이건 정말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한데).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일단 우주의 총에너지가 유한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도록 하지요(에너지보존 법칙). 우주는 또한 중심도, 방향도 없고(등방성: 어디서 봐도 똑같아 보인다), 대부분의 공간은 잉크처럼 까맣습니다. 이런 곳에서라면 흩어져 반짝이는 별들을 이정표로 삼아야 공간에 대한 감각과 지각이 생겨날 것 같습니다.
일단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태양입니다. 지구에서부터 ‘겨우’ 1억 5천만 km 떨어져있는데, 천문학적 거리 단위로 ‘8광분(초당 3억m로 8분간 날아온 거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보는 태양은 언제나 8분 전의 태양이라는 뜻이지요. 지구는 태양과 너무 근접해 있어서 밤이 되도 하늘의 반짝이는 별로 보지는 못합니다.
태양의 크기는 지구의 110배 가량, 질량은 태양계 전체의 99%를 차지합니다. 태양 전체가 1초 간 생산한 에너지는 지구에 사는 전체 인구가 100만 년 간 넉넉히 소비할 수 있는 양으로, 사실상 지구는 그냥 태양 주변에서 태양이 숨 쉴 때 나오는 미세 숨결 하나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서도 충분히 유지되는, 아주 소소한 부스러기 천체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는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30만km x 365.25일= 9460730472580.8km), 즉 광년(light year)을 거리의 단위로 하겠습니다.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별(센타우르스 자리)는 얼머나 떨어져있을까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30만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태양이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최대 천억 개 별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태양은 이 나선 모양의 은하 가장자리에 속한 아주 평범한 별입니다. 태양보다 큰 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은하의 중심을 차지하는 건 블랙홀인데, 크기가 태양의 10만 배 정도입니다. 우리은하 안에는 별뿐 아니라 이런 블랙홀도 수없이 많은 걸로 추정됩니다. 한편 우리 은하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는 거리가 10만 광년쯤 됩니다. 이말은 은하의 한쪽 끝 별에서 다른 쪽 끝 별에 보낸 신호가 도착하는 데 최소 10만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빛보다 빠른 것은 없으므로).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군에 속하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규모는 더 큽니다. 별이 1조개, 우리로부터는 250만 광년 떨어져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실만으로도 왜 여전히 외계인의 존재 여부가 미스터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별에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그래서 우리와 그들 중 어느 한 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낸다 해도 그 신호를 받기까지는 최소 수천, 수만 년 이상 걸립니다.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골디락스 존'에 국한해서 생각해봐도 별과 별사이 신호를 살아생전 주고받기란 요원하다고 밖에...(우리가 지구라는 아주 자그마한 세계에 살아서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생각해보면 얼마나 큰 축복인지 ...)
사실 우주의 구성단위는 별이 아니라 은하입니다. 생물의 세포에 해당되지요. 별이 최소 10억 개에서 최대 100조개 모여 다양한 크기의 은하가 됩니다. 사람들이 모여 도시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몇 개나 될까요? 이제 숫자는 무의미하지만 수천만 개에서 최대 1조개. 누군가는 사람 두뇌의 시냅스 수와 같다고도 합니다.
은하들은 모여서 은하군이 되고, 은하군들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구조물인 은하단으로 모입니다. 우리은하는 국부 은하군에 속하고 이는 다시 처녀자리 초은하단(100개 은하군 포함)에, 처녀자리 초은하단은 더 큰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총 10만개 은하)에 속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이 모든 은하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주의 끝이라고 할 우주 지평선은 사실은 관측 가능한 우주로 제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아직 기술이 부족해서 관측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상 관측이 불가한 우주가 존재합니다. 이 원리상 관측 불가능성은 반대로 가장 작은 영역인 ‘양자역학’ 세계의 핵심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은 흡사 맞물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우주는 정말 놀라운 곳이고, 그 우주를 이해하는 인간은 그보다 더욱 놀라운 존재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P.S: 여전히 우주의 기하학을 완성할 수 없는 이유!
우주는 탄생 이후 지금까지 계속 팽창해서 대략 10억년마다 5~10% 가량 계속 공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공간이 팽창해도 은하들이 형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별들을 묶어주는 중력의 지배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결정적으로 놀라운 사실이 더 있습니다. 별들과 은하, 그밖에 천체들 모두 다 합해도 우주 전체의 대략 5%에 불과합니다. 이 5%는 우주에서 빛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드러난 물질들의 단면입니다. 우주의 나머지 95%는 빛이 그 존재를 드러내 주지 못한 암흑물질(23%)과 암흑 에너지(72%)입니다. 생각할수록 우주는 미스터리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