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이사하기
쉽지 않은 나라 인도에서 별 큰 어려움 없이 산지 이제 2년 차, 그것이 행운인 줄도 모른 채 인도 생활 3대 복을 누리고 있었건만 첫 번째 메이드가 떠났고 이번엔 집주인이 나를 집에서 나가라 한다. 재계약할 때 월세도 올리지 않고 까다롭게 굴지 않았던 주인이 갑작스럽게 집을 매매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해외이사한 지 2년도 안되어 또다시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요즘 인도가 아주 핫한 나라이다 보니, 주재원 숫자를 늘리는 한국 기업들도 많고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인도로 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는 고급 아파트들과 편의 시설이 모여 있어 인기 있는 지역이라 나날이 월세가 오르고 있는 상황.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 그냥저냥 적당한 집이 있어 누가 먼저 계약할세라 부랴부랴 한 달 만에 이사를 결정했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간다고 하니 나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과 염려를 해준다. 인도 사람들 일 시키기 어렵고 속 터지는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회사를 통해 이사하는 것이니 큰 문제가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이사하는 이틀간 내가 느꼈던 감정은 처음엔 답답함으로 시작해 그 후 분노, 무기력함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온 우주가 나의 이사를 막는 느낌이었다.
느릿느릿 이틀 간의 이사
인도에서 이사는 보통 이틀 걸린다. 하루는 포장, 하루는 짐을 푼다. 바로 옆동이어도 마찬가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우선, 한국처럼 이른 시간에 이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이사를 시작하기로 한 날 9시쯤 작업반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후 시간차를 두고 다른 직원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뭐 이것까진 인디안 타임이라 칠 수 있다. 일하는 속도 또한 한국인에 비해 배는 느리다. 전화하는 사람(인도 사람들은 전화를 정말 많이 자주 한다), 직접 일은 안 하고 말로만 지시하는 사람(=작업반장) 그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안 그래도 느린 작업 속도를 더욱 느리게 한다. 온 직원이 모여 짐을 싸기 시작한 시간은 10시. 두 시간 좀 넘게 짐을 싸더니 점심 먹으러 칼같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첫째 날 짐을 다 싸지도 않았는데 5시 반쯤 주섬주섬 갈 준비를 한다. 남편이 6시까지 남은 짐을 더 싸라고 해서 그나마 30분 더 일했다.
또한 인도에는 이사의 속도를 몇 배는 더 가속시켜 줄 사다리차 따위는 없다. 세계 1위 인구 강국답게 모든 짐박스를 사람이 직접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른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 시간 안에 박스를 최대한 날라야 하건만 매사에 급할 것 없는 인도인들은 자신의 느린 속도를 지키며 여유를 부리니 이사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계획성 없는 이사팀, 디렉팅은 내가 직접
이사 이틀째날, 이삿짐을 옮기는 서비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 났다. 이럴 경우 극단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국 사람들이라면 남은 짐을 미리 다 싸놓고 있다가 엘리베이터가 작동되는 순간 바로 짐을 옮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니 이사 들어가는 집에서 짐을 풀고 있던 인력이 갑자기 놀기 시작한다. 왜 일 안 하고 있냐고 물으니 예전 집에서 짐이 안 와서라고 한다. 예전 집은 짐을 아직도 싸고 있었다. 남편은 놀고 있는 인력에게 빨리 이 집에 있는 짐을 마저 풀고 저쪽 집 가서 짐 싸는 거 도우라고 지시(라고 쓰지만 닦달)했다. 직원들은 그제야 느릿느릿 예전 집으로 옮겨 갔다.
장롱을 옮길 때 일이었다. 복도 맨 끝에 있는 안방에 장롱을 넣어야 하는데 장롱이 너무 크고 복도가 좁아 그럴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은 복도 시작하는 쪽의 방에 넣으라고 했다. 그 방은 게스트룸으로 꾸밀 예정이었기 때문에 장롱을 넣을 수 없었다. 이미 직원들은 게스트룸에 넣으려고 준비 중이었고, 우리는 일단 저지시켰다. 남편은 장롱 문과 장롱을 분리해서 문을 통과할 수 있게 만든 후 안방에 넣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사 직원들은 자기네 중엔 목수가 없어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일은 첫째 날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는 이사팀에게 목수를 섭외해 오라고 시켰다. 둘째 날 오후 늦게 목수가 나타났고 장롱을 분리해서 안방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이사가 늦어진 것은 물론이다.
이사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럴 때 한국 이사팀은 어떻게든 대책을 찾는 반면 (사실 그럴 만한 상황도 별로 없긴 하다), 인도에서의 이사는 각종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가 대책을 제시하고 대충 넘어가려는 이삿짐 직원들에게 일일이 할 일을 줘야 한다.
조심성은 없고, 임기응변은 강한
인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심성이 별로 없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항상 치고 지나가기 일쑤고 새치기는 일상이며 어디서나 큰 소리로 시끄럽게 대화한다.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들 또한 조심성이 없어서 청소기를 쿵쾅거리며 내려놓고, 그렇게 해서 부서진 청소기가 몇 개는 된다.
이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남편의 책상을 옮기는데 책상다리를 분리하지 않고 옮기다가 다리가 빠졌다. 사실은 빠진 게 아니라 다리를 고정하는 나사가 무리한 힘을 주니 상판에서 떨어져 나가고 나사가 박혀 있던 자리에 구멍이 크게 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책상 옮기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상판을 그대로 얹어 놓고 다른 일을 하려는 게 아닌가. 내가 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전동드릴을 가진 사람을 불러 책상을 뒤집어 보라고 시켰다. 나사가 박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나고 다리는 덜렁거렸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 태도에 화가 나서 저절로 목소리가 커졌다.
"책상다리를 분리하고 옮겼어야지요! 그리고 다리가 부서졌으면 얘기를 해야지요!"
커튼을 달 때 일이었다. 커튼을 담은 박스를 정리할 생각은 안 하고 수다 떨고 있는 직원들을 불러 세워 달게 했는데 조금 달다가 커튼을 달 수 없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커튼 레일이 모자라서라고 한다. 이번에는 남편이 큰 소리를 냈다.
"있는 것만이라도 달으라고요!"
온 우주가 막는 나의 이사
예기치 않았던 엘리베이터 고장과 장롱 분리 사건, 너무 느린 짐 싸는 속도와 틈만 나면 쉬려고 하는 인도인들을 상대로 싸우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피곤하게 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사하기 전에 고쳐졌어야 할 정수기, 교체했어야 할 조명, 고장 난 냉장고와 도어록 수리 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수리 기사들에게 매번 전화 걸어 언제 오냐고 닦달해야 했고, 이 모든 것들을 이사 전까지 끝내 놓기로 하고 끝내지 않은 부동산 중개인한테 일정을 계속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난리를 쳐서 겨우 수리기사가 와도 부품이 없어 사러 간다고 하고 몇 시간이고 돌아오지 않고, 어디 있냐고 전화해 보면 내일 다시 온다고 한다. 인도 사람답게 오겠다고 한 시간에 당연히 오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도 사람! 인도에서는 뭘 수리하려면 절대 한 번에 되는 법이 없다. 실제로 정수기 수리기사는 2번, 냉장고 수리기사는 3번, 조명 기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왔다. 도어록 수리기사는 고치다 말고 부품 가지러 간다며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메이드까지 아프다고 하고 이사 둘째 날부터 오지 않았다. 열이 나서 안 온다는데 이제 2년 차인 인도 마담으로서 나는 이게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안다. 이삿날 아프다고 하고 안 나오는 메이드 이야기를 나는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메이드들은 평소에도 "I have fever today." 또는 I'm not feeling well today."를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얘기하고 안 나온다. 이건 "I don't want to work today."와 같은 말임을 몇 번 당해보면 안다. 메이드가 오지 않아 집안 가득한 먼지와 쓰레기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쯤 되니 온 우주가 나의 이사를 막는 것 같다.
한 달 만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이사를 해서 그런지 이사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집은 수리해야 할 것들 투성이고 한 번 불러서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매일매일 수리기사를 부르는 생활을 아직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삿날 맞춰 아팠던 메이드를 자르고 새로운 메이드를 구한 것이다. 그녀가 믿음직하게 집안을 깔끔하게 청소해 주고 있다.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나라,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는 나의 글에서는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단 한치의 비효율과 나태함을 허용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 나는 이번 이사로 인도인의 비효율성과 무계획성과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불성실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야 말았다. 인도에서 이사, 귀임하기 전까지 또 한 번은 없기를 제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