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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Sep 13. 2024

나는 왜 골프를 치는가

살기 위한 몸부림

 요즘 인도는 이상 기후인 것 같다. 8월에 몬순이 끝났어야 정상인데 9월 중순이 다가온 지금도 매일 비가 내린다. 한국의 장마철처럼 하루종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짧은 시간 동안 사정없이 퍼붓는다. 그러면 배수 시설 좋지 않은 인도의 도로에는 금세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긴다. 지난주 골프를 가기로 한 날 아침에 이렇게 비가 퍼부어서 골프가 취소된 적이 있다. 초록색을 봐야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못 가서 어찌나 답답하던지. 그날 하루는 종일 힘이 쭉 빠져 있었다.


 나는 이제 필드에 나가기 시작한 지 1년이 좀 넘은 골린이다. 보통은 주 2회, 많으면 3회 정도 골프를 친다. 참으로 팔자 좋은 주재원 아내의 삶이다. 그러나 나는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치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 이것저것 해봤으나 그나마 골프가 제일 나아서 친다. 인도가 첫 주재지 이긴 하지만 인도에서 골프를 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골프를 치는 것과 그 의미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인도는 내가 여행을 가본 그 어떤 나라보다 열악한 곳이다. 나의 다른 글에서도 누누이 얘기하였지만 '걸어 다닐 자유'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는 물론 보행자 신호등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도로, 길거리에 널려 있는 소떼와 개떼, 거기에 가끔씩 습격하는 원숭이와 까마귀도 걸어 다니기 어려운 이유의 한몫을 한다. 인도에서는 길거리에 나가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자유가 없으니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무척 제한적이다. 아주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차를 타도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기 적당한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이 많이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 수준이 상당히 열악하다. 관광지를 가는 방법도 있긴 하다. 그러나 관광지가 있는 올드 델리는 우리 집에서 무척 멀다. 거기에 인도의 어마어마한 교통 체증까지 더해지면 왕복 세 시간은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갔다 치자. 그 관광지는 우리가 여행지에서 봐왔던 곳과 많이 다르다. 엄청나게 많은 인도 사람들(괜히 인구 15억이 아니다) 틈을 뚫고 쓰레기가 가득한 길을 지나 현지인 입장료보다 몇 배는 더 비싼 외국인 입장료를 내고 호객하는 인도인 수십 명을 물리치고 가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정신이 피곤하다. 그 광경을 보고 오면 다시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회 활동을 하거나 외국인 커뮤니티의 취미 동호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잘 모르는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건 무척 기 빨리는 일이다. 나를 채우기보다는 나를 소진하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것을 다 제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골프밖에 없었다. 즉, 할 게 없어서 골프를 친다. 그러나 나는 홀마다 스코어를 매기고 지난번 게임보다 몇 타가 줄었는지 세는 그런 진지 골퍼는 아니다. 나는 그저 골프장에 가는 게 좋아 골프를 치는 명랑골퍼이다. 골프장은 온통 초록색이다. 내가 사는 곳 주변의 어디를 가도 그런 초록색은 볼 수가 없다. 골프장에는 가끔 개는 있지만 소도 원숭이도 없다. 경적 소리와 쓰레기도 없다.


 인도 골프장에서는 카트가 페어웨이로 들어갈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페어웨이를 달리는 그 기분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유로움 못지않다. 운전을 할 수 없는 인도에서 잠시나마 운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초록의 풍경을 보면서 말이다. 카트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공 앞에 멈춰서 공을 친다. 그리고 또 카트를 타고 달려가 공을 친다.


 한국보다 날씨가 따뜻한 인도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골프를 칠 수 있다. 인도의 겨울은 추우면 영상 5도 정도까지 기온이 떨어진다. 그때는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서 골프를 칠 수 있는데, 카트 탈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18홀을 천천히 걸어서 치면 추워서 움츠러들었던 몸도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거나 피트니스 클럽에 가서 뛰는 것 외에 5분 이상 걸을 일이 없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오래 걸을 수 있는 곳은 골프장이다. 개도 소도 없고, 쓰레기도 없다. 잔디를 밟으며 내 발길 닿는 대로 걸을 수 있다.

골프를 치다 보면 이렇게 그림 같은 풍경도 볼 수 있다.

 골프의 좋은 점은 또 있다. 함께 골프 치는 사람들과 말을 별로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다들 각자의 샷에 집중한다.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여 있는 공을 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생각을 단순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 그러다 잘 맞은 공이 뻥 날아가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렇게 한 타 한 타 집중하다 보면 언제 다 치나 싶었던 18홀이 끝나 있다. 기분이 뿌듯하고 상쾌하다. 그리고 나면 이 답답한 인도의 삶을 버텨낼 힘이 생겨난다. 나는 이 기분을 느끼려고 골프를 친다.


 내일은 골프 치는 날이다. 비 예보가 80%이지만 내일은 비가 와도 치기로 멤버들과 약속했다. 매일 날씨도 우중충한데 스트레스를 풀 길이 딱히 없으니 다들 초록색을 보고 싶어 난리가 났다. 아마존 인디아에서 일회용 같은 우비도 주문해 놨다. 폭우가 내리는 일은 드무니 보슬비 정도는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다. 인도에서 골프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제발 내일 비가 오지 않기를. 초록색을 보고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또 얻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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