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갔고, 나도 님을 보냈습니다
(1편에 이어 계속)
대답 없는 그녀
고향 갔다가 오지 않는 메이드의 이야기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숱하게 들어서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A는 예전에도 한번 고향에 갔다가 늦게 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땐 기차가 연착되어 이틀 정도 늦게 온 것이었고,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메시지에도 답이 없었다. 나는 설마 딸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고, 대답 없는 그녀에게 한편으로는 배신감을 느꼈다.
메이드가 없는 채로 계속 집안일을 하기는 힘들었던 나는 기약 없이 그녀를 계속 기다리느니 다른 메이드를 구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1년간의 의리가 있지, 나는 대답 없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냈다.
"A야, 네가 5월 15일에 온다고 해서 나는 쭉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이미 오기로 한 날짜가 며칠이 지났네. 너랑 네 가족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돼. 언제 돌아온다고 얘기를 해 주면 좋을 텐데. 만약 네가 고향에 더 있어야 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메이드를 구해야 할 것 같아. 그러기 전에 너에게는 미리 얘기해야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연락했어."
돌아오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것도, 상황 탓을 하는 것도 아닌 나름대로는 예의를 다한 메시지였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메시지를 읽긴 했지만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화가 나고 괘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새로운 메이드를 구했고, 새로운 그녀가 우리 집 일에 익숙해졌을 때쯤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A가 고향에서 돌아와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A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냈냐는 내 안부 인사에 A는 이번에는 잘 지냈다는 답장을 보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향에서는 돌아왔는지, 새로운 일자리는 구했는지 물어보았고 A는 순순히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혹시 우리 집에서 다시 일하지 않겠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며칠이 지나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분노와 배신감이 몰려왔다. 내가 한국 커뮤니티에 그녀를 소개해서 A는 두 개의 일자리를 더 얻을 수 있었고, 그때 A도 나에게 정말 고마워했으며 나 또한 A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랬는데 어떻게 그녀가 나에게 이럴 수 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우리 집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것일까. 그때 내 머릿속에 문득 과거의 사건이 몇 가지 떠올랐다.
한국인 커뮤니티보다 견고한 메이드 커뮤니티
A를 처음 고용했을 때 인도에 온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신상 마담이었던 나는 A가 부르는 금액 그대로 월급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나도 아는 사람이 생기고 이런저런 정보를 얻게 되면서 그 금액이 시세보다 많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정을 아예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안 이상 돈이 아까워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른 메이드들의 시세는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서 A 몰래 두 명 정도의 메이드 면접을 보았다. A가 일할 때 면접을 볼 순 없기 때문에 A 출근 시간 전에 면접자를 오라고 했고, 면접을 보면서 어느 정도의 시세를 파악했다. 그런데 출근한 A가 우리 집에 들어서자마자 씩씩거리면서 나에게 물었다.
"마담, 혹시 다른 메이드 면접 봤어?"
나는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A는 화난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면접본 그 메이드는 내 친구야. 넌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는 메이드 커뮤니티에서 모든 걸 공유하기 때문에 누가 면접 봤다 하면 바로 알 수 있어. 그리고 내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나에게 먼저 말을 했어야지. 나 몰래 면접 보고 나서 다른 메이드 구하고 날 자르려고 했어?"
메이드 월급의 평균 시세를 파악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할 생각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먼저 들키게(?) 되자 이래저래 내 입장이 불리해졌다. 그렇지만 마담이 모양 빠지게 메이드한테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시치미를 뚝 떼고 A에게 얘기했다.
"내가 알아보니까 네 월급이 좀 높은 편이더라. 그래서 나는 궁금해서 다른 메이드는 얼마쯤 받는지 알아본 거였어. 너를 자를 생각을 했던 건 아니야."
그랬더니 A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마담, 그렇다면 나에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나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딸을 먹여 살려야 하고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돼. 내 월급이 불만이었으면 우리가 서로 얘기해서 조정할 수 있잖아. 아무튼 나는 기분이 너무 상했어."
그날 그녀는 기분이 상해 일을 못하겠다고 일찍 퇴근해 버렸고, 나 또한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서 짜증이 났다. 그러나 시세보다 높게 월급을 주는 것도 아까웠다. 결국 나는 A와 나는 적정한 선에서 월급을 조정했다. 그녀는 그 뒤에도 군말 없이 일하기는 했다. 이 일이 떠오르고 나자 기분이 상했던 A가 월급을 많이 주는 다른 집을 찾아 옮겼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물건을 가져간다든가 하는 말썽을 안 일으키고 집안일을 깔끔하게 잘 해냈던 특 A급 메이드인 A에게 시세보다 높은 월급을 주더라도 데리고 있을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아주 잠깐 들었다.
A는 정말 돈을 가지고 갔을까
나는 A가 우리 집에서 일한 1년을 반추해 보았다. 정말로 그녀가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었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또 다른 두 가지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는 우리 아이의 용돈 봉투가 사라진 일이었다. 아이가 숙제를 다 하거나 심부름을 할 때마다 내가 100루피씩 주고 아이는 그것을 모아 봉투에 담아 책상 서랍에 넣어 놨었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돈을 지갑이 아닌 봉투에 담아 놓은 것이었다. 하필 그 봉투는 투명하게 안이 다 보이는 봉투였다. "저는 돈이에요"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이가 용돈 봉투가 사라졌다고 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찾아보라고 말했으나, 동시에 "혹시 A가 가져갔나?" 하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A에게 네가 가져갔냐고 묻는다면, 집안에서 뭔가가 조금만 눈에 안 보여도 그 즉시 나는 A를 의심하게 될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아이의 방을 다 뒤집어 샅샅이 정리했으나 용돈 봉투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남편의 지갑이 사라진 사건이었다. 인도에서는 늘 현금을 쓸 일이 있어 한 번에 얼마어치 현금을 찾아 놓곤 하는데 그날 남편도 현금을 찾아 지갑에 넣고 책상 위에 지갑을 올려뒀었다. 그 지갑은 장지갑 안에 넣을 수 있는 얇은 보조지갑이었다. 남편은 며칠 동안 지갑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A가 우리 집에서 일한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없어진 것은 딱 이거 두 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A에게 네가 가져갔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가져갔다 한들 본인은 아니라고 했을 것이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애서 나는 끊임없이 그녀를 의심했을 것이었다. 현금을 잘 간수하지 않고 아무 데나 놔둔 우리 가족도 잘못이었다. 정말로 A가 돈을 가져갔는지 안 가져갔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집안 어디에서도 돈을 찾을 수 없는 것을 보니 우리 집에 출입했던 단 한 사람의 외부인인 A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A가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을 훔쳐간 우리 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계속 일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드디어 나는 마음속에서 A와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메이드에게 집안일을 지시하면서 A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구석구석 깔끔하게 청소했던 그녀, 일하기로 한 시간보다 일이 빨리 끝나면 운동화나 발매트를 빨아 시간을 다 채웠던 성실한 그녀, 아이가 깜빡 잊고 내놓지 않은 도시락을 찾아 설거지해 놓았던 센스 있는 그녀... 그녀는 왜 나의 연락을 무시한 것일까! 얼른 잊어버리자. 이제 그녀는 떠나갔다.
견물생심 만들지 않기, 그리고 거리두기
나는 메이드랑 소소하게 수다를 떨거나, 먹을 것을 나눠주는 다정한 마담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마담과 메이드 사이에 나중에 문제가 되어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 내 성격이 누군가와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A가 나의 연락을 무시했을 때 내가 너무 무미건조하게 대해서 그런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메이드를 고용하고 나서 든 생각은, 내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만큼 적정한 거리 두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차갑게 대할 필요도 없지만, 마음을 다해 잘해줘도 어차피 떠나갈 사람은 떠나간다. 특히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인도 사람들은 가족이 있는 고향을 떠나와 혼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고향에 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정말 많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서 일하는 메이드도 언젠가 갑자기 떠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메이드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드의 할 일은 청소와 설거지, 빨래 정도 까지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없어진 돈봉투는 아이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는데, A는 아이의 여러 가지 어질러진 물건을 서랍을 열어 정리하고는 했었다. 그러다 그 돈봉투를 봤을 것이고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분명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상황이 돌아가도록 만든 것은 내 잘못이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메이드에게는 서랍이나 책상을 정리하게 하지 않는다. 정리는 마담이 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정리해야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알고 쓸데없이 의심하지 않고 물건을 찾을 수 있다. 집에 가족이 아닌 사람을 들인다는 건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칭찬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칭찬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일 메이드가 오면 일을 빠르게 잘해줘서 고맙다고 칭찬을 해줘야겠다. 나의 두 번째 메이드 또한 일을 잘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인도 생활 3 대복을 다 갖췄다. 집값 인상 없이 재계약한 집주인, 어디에 있든 연락이 잘되고 젠틀하게 운전하는 기사, 우여곡절 있었지만 두 번째로 맞은 손이 빠른 메이드. 이 행운, 귀임까지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