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도 대답 없는 그 이름, 메이드
인도 생활의 3대 복(福)
여름에는 48도까지 올라가는 타 죽을 듯한 더위에 겨울에는 아파트 앞동조차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고기마저 구하기 힘들어 일상의 순간순간 정신적 타격을 크게 받는 나라 인도에서 내가 더 힘든 삶을 사느냐 아니면 조금은 우아한 삶을 사느냐를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바로 집주인, 기사, 메이드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때로는 가족보다도 더 나의 일상을 지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집주인부터 이야기해 보자. 외국인들은 인도에서 100% 세입자로 산다. 그래서 집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고장이 나면 당연히 집주인에게 연락해야 한다. 정말 이상하게도 인도집은 하자가 아주 많아서 주인에게 연락할 일이 제법 있다. 우리 집은 인도에서 유명한 건설회사가 지은 고급형 아파트인데도 장마철이 되면 비가 새는 방이 있고 에어컨에서는 종종 물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는 살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라 치자. 문제는 집주인이 갑자기 횡포를 부릴 때이다.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갑자기 월세를 올려 버린다거나, 내가 이사 갈 테니 일주일 만에 집을 비우라는 등의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기사와 메이드는 집주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 매 순간을 함께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들과 문제가 생기면 하루하루가 괴로워진다. 차선 무시는 기본이요, 아무 때나 거리를 활보하는 소떼 때문에 외국인들은 웬만하면 외국에서 운전을 하지 않고 기사를 고용한다. 그래서 기사는 곧 온 가족의 발이다. 언제 어느 때나 내가 필요할 때 쉽게 연락이 닿아야 하는데, 기사들 중에는 전화를 제 때 안 받거나 왓츠앱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면 기사로서는 낙제다.
그 외에도 골치 아픈 경우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다. 초행길인데 구글맵을 보지 않아 엄청나게 막히는 곳으로 간다거나 시종일관 경적을 울려대며 난폭 운전을 하는 경우도 있고,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처럼 기름을 빼돌리는 경우도 주변에서 본 일이 있다. 남편(Sir)이 행선지를 말할 때는 꼬박꼬박 대답하는데 아내(Madame)가 말할 때는 대답하지 않아 몇 번을 되묻고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출근해야 하는데 갑자기 그날 아프다고 해서 오지 않고 대타 기사도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음주 운전을 하거나 약에 취한 사람들도 있다. 기사와 문제가 생기면 차를 탈 때마다 괴로워진다.
메이드 또한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대부분 메이드를 고용하여 집안일을 하게 한다. 인건비가 워낙 싸기도 하지만 인도집이 한국집보다는 대부분 넓고 방마다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집안일이 많은 편이다. 나 또한 인도에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사를 누려보자 하는 마음에 인도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드를 고용했다. 메이드는 보통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고, 일하는 시간에 따라 파트타임과 상주로 구분한다. 상주 메이드는 집에 딸린 메이드룸에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서, 메이드야말로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다. 또한 내 살림을 만지고 정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떤 관계보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메이드도 별 사람들이 많다. 메이드에게서 겪을 수 있는 대표적인 스토리는 집의 물건을 훔쳐 간다거나, 돈을 빌려달라 하거나, 고향에 갔다가 안 오는 경우다.
나는 아주 감사하게도 인도에 온 지 1년이 지나도록 집주인, 기사, 메이드와 아무 트러블이 없었다. 그래서 기사나 메이드 문제로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 집에서 1년 동안 일한 메이드가 고향에 갔다가 연락이 두절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였다.
1년간 일한 그녀는 왜 갑자기 연락을 끊었을까
우리 집 첫 번째 메이드(편의상 A로 지칭한다)의 고향은 다르질링이었다. 델리에서 기차로만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남편은 코로나 때 죽고 12살 딸은 고향 부모님과 함께 살고 본인은 이곳으로 돈을 벌러 온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서너 명의 메이드를 면접 보았는데,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하고 지금이라도 당장 일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A는 다른 메이드들하고는 조금 달랐다. 면접을 마치고 우리 집 현관 쪽으로 나가려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말했다.
"마담, 내가 진짜 일 잘할 수 있어. 아마 네가 나를 써보면 알 거야. 나를 고용하면 너는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 나는 A를 고용하였다. A는 면접 때의 그 태도를 증명이라도 하듯 과연 손이 빠르고 일을 깔끔하게 잘해서 처음부터 흠잡을 데가 없었다. 전날 점심과 저녁 사이 쌓아 놓은 설거지감을 말끔히 씻어 정리했고, 마치 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정갈함으로 각 방 침대를 매만졌다.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더러워진 운동화를 찾아내어 깨끗하게 빨았고, 가끔 내가 부탁하는 야채나 과일 등의 식재료 손질도 깔끔하게 해 놨다. 쓸데없이 나에게 수다를 떨지도 않고 그 모든 일을 묵묵히 잘 해냈다. 나는 A가 마음에 들었다.
A가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몸이 안 좋아 고향에 오랫동안 가 있다가 델리로 다시 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우리 집 말고는 다른 일자리가 없었다. A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딸을 먹여 살려야 해서 돈을 더 벌어야 했다. 나는 A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에 한국 커뮤니티에 A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손도 타지 않고 내가 집을 비울 때에도 내가 집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일을 해서 나는 A를 믿었다.
A가 우리 집에서 일한 지 딱 1년째 되는 시기는 인도의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인 홀리였다. 메이드들이 일한 지 1년 정도 되면 홀리와 디왈리에 연봉을 나누어 보너스를 주는 것이 관례이다. 나도 홀리 보너스를 주면서 오래오래 우리 집에서 일해 달라고 했다. A도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A는 딸이 많이 아파서 2주 정도 고향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딸을 떼놓고 먼 곳에서 일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나는 꼭 다시 돌아와서 우리 집에서 일해 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마음 한편에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A의 소중함을 느끼며 보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2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A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하루 전날, 나는 A에게 내일 오는 거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하루가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메이드 잠적이 바로 이런 것인가. 드디어 올게 왔나 보다 했다. 이틀이 지나 A는 답을 보냈다. A의 답장에는 딸이 아직 많이 아파서 고향에 더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왜 이런 것은 내가 연락하기 전에는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걸까. 내가 연락하지 않았다면 말도 없이 안 올 생각이었던 걸까. 나는 조금 화가 났다. 그러나 딸이 아프다는데 모진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언제 올지 정확한 날짜만 알려달라 했다. A는 약 열흘 후의 날짜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A는 약속한 그날 오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