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허술한 샷시의 환장 콜라보
한낮은 여전히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지만 아침저녁으로 20도 언저리로 내려가는 인도의 10월. 아침 공기 속에 섞인 희미하지만 분명한 탄내를 감지했다면 곧 그놈이 습격하리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려야 한다. 그놈은 바로 미세먼지다.
남편이 인도 주재원 발령을 받고 나서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바로 델리 지역의 악명 높은 미세먼지였다. 막상 인도에 와보니 델리의 미세먼지는 걱정했던 것 이상으로 상상 초월이었다. 나는 공기청정기의 보라색 불빛을 인도에 와서 처음 보았다. 정말 심할 때는 저 멀리 있는 곳이 뿌옇게 보이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파트 바로 앞동조차 자욱한 연기에 가린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집안을 비집고 들어와 있는 탄내!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되었다면 사실 이미 늦은 것이다.
새벽 공기가 약간 선선해졌을 때 지체 없이 월동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미세먼지 공격에 맞서는 무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문풍지와 박스 테이프다.
한국에서 인도로 이사 올 때 컨테이너로 잔뜩 실어온 우레탄 문풍지. 10 X 20mm 두께의 질 좋은 문풍지는 아마존 인디아에서는 팔지 않으니 필히 한국에서 가져와야 한다. 그러나 창문 틈에 이거 하나 붙였다고 시공이 다 끝났다 생각하면 봉변당하기 쉽다. 인도의 창문은 놀랍게도 겹창이 아니라 홑창이다. 인도가 덥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엔 10도 이하로 내려가는데 홑창이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지만, 더 너무한 것은 샷시의 퀄리티다. 창문 프레임과 창문이 서로 들어맞지 않아 들떠 있기 일쑤고 여기저기 틈이 있다. 그 사이로 소음도 들어오고 샷시 끝 실리콘에 새카만 먼지도 와서 앉아 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이 박스테이프다.
나는 박스테이프를 항상 대량으로 구비해 놓고 사는 사람이다. 남편은 도대체 박스테이프가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 박스테이프야말로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웬만한 상황에서 박스테이프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가구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박스테이프를 붙여 다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스카치테이프 대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인도에 와서 새롭게 찾은 박스테이프의 용도는 바로 창틈 차단이다. 영화 '마션'에도 나오지 않는가. 종류는 조금 다른 특수 테이프긴 하지만, 맷데이먼도 화성에서 부서진 우주선을 테이프로 보수해 살아남았다. 박스테이프는 그만큼 믿음직하다.
창문 아래에도 틈이 무척 많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있으면 어느샌가 유령처럼 집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그놈을 막기 위해서는 아주 꼼꼼하게 시공해야 한다. 문풍지를 붙이고 나서도 남아 있는 틈을 폼랩으로 막고 그 위를 박스테이프로 몇 번을 밀봉했다. 이제 월동 준비는 다 되었다. 우주에 던져졌던 맷 데이먼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인도의 미세먼지는 사실 이제 시작이다. 11월부터 1월까지 앞이 안 보이는 AQI 1000 이상의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델리의 대기오염은 북부 펀자브 지방에서 하는 화전, 난방을 위한 쓰레기 소각, 델리 인근 지역의 각종 공장 시설, 엄청난 인구와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 그 모든 것이 빚어내는 총체적 난국이다. 이 총체적 난국을 앞으로 두 번을 더 견뎌내어야 한다니 우울하다. 그저 우리 가족들의 건강이 괜찮기만을 바랄 뿐. 일단은 박스테이프와 KF94 마스크로 잘 이겨내 보리라. 24시간 풀가동 중인 듬직한 공기청정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