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병 천국 인도
"엄마, 나 열나는 것 같아."
어느 날 스쿨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단짝 친구와 놀이터행도 마다하고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가슴이 철렁해서 이마에 손을 짚어봤더니 정말 열이 난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우기가 끝나는 9월은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라 그런지 온갖 이름 모를 종류의 바이러스가 돌아 아픈 아이들이 꽤 많다. 이번에는 무사히 지나가나 했더니 기어이 열이 나고야 말았다.
아이는 그날 저녁부터 축 쳐졌고 밤이 되니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여덟 살 인생 최고의 열이었다. 한 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한국에서 가져온 해열제를 교차 복용했지만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아파도 발을 동동 구를 판에 열악한 인도에서 이렇게 높은 열이 오르다니, 무슨 큰 병은 아닌지 겁이 덜컥 났다. 빨리 병원을 가야 했다. 아이가 예전에 진료받은 적이 있었던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언제 어디로 가면 되겠냐고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먼지가 자욱한 길가에는 소떼들이 앉아 있고 맨발의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 서 있는 다 쓰러져 가는 건물... 내가 인도에 오기 전 상상했던 인도 병원은 이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인도 병원은 생각보다 아주 괜찮다. 나의 상상 속 그런 병원도 있기야 하겠지만 인도 병원은 번듯한 건물에 꽤 깔끔하고 시스템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몇 개의 유명한 큰 종합병원이 있다. 또한 외국인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비용 선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인도 병원의 특이한 점은 많은 의사가 개인 클리닉과 종합병원을 오가면서 진료한다는 점이다. 진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예약을 하거나 의사가 지금 어디 있는지 파악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인도 의사들은 개인 연락처를 아주 아무렇지 않게 알려준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래서 내가 병원에 가기 전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그날 의사 선생님은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었다.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예약, 수납부터 시간이 엄청 걸리지만 의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면 이 모든 절차를 대략 건너뛰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나는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아이와 함께 빠르게 의사 선생님의 방으로 직행했다. 이제 막 출근한 의사 선생님은 헐레벌떡 목에 청진기를 걸고 나타났다. 아이 열이 너무 높다고 다급한 상황이라고 내가 난리를 쳐놔서 고맙게도 출근하자마자 제일 첫 번째로 진료를 봐준 것이었다.
그때는 때마침 뎅기가 유행할 시즌이었다. 그러나 열이 난 지 하루밖에 안 되어서 아직 뎅기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열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서 며칠 지켜보고 나서 계속 열이 나면 피검사를 하라고 했다. 이 피검사는 어떻게 하는가 했더니 피검사 전문 회사에 의뢰하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컴퓨터로 피검사 회사 사이트에 접속했다. 의사가 지정해 준 피검사 항목을 선택하고 피검사를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을 선택한 뒤 결제까지 마쳤다. 30분 있으니 내 휴대전화로 피검사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2시간 후에 피검사를 하러 집으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한다. 인도는 인구는 끝내주게 많아서 인력으로 하는 모든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인력이 넘쳐 나서 그 모든 게 아주 빠르고, 동시에 매우 저렴하다.
주사기와 유리병이 담긴 가방을 들고 나타난 검사원이 피를 뽑아간지 한 시간이 지나자 내 왓츠앱으로 결과지 파일이 날아왔다. 나는 그걸 바로 의사에게 보냈다. 선생님은 결과지를 보더니 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항생제 처방을 해줬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약국에 가서 항생제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마침 그 약국에는 그 약이 없었다. 다른 약국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차가 남편 회사에 있어 이동 수단이 없던 상황이었다. 우버를 타고 나가면 되긴 하지만 무작정 이 약국 저 약국 헤맬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앱스토어를 검색해 보니 약국 배달앱이 있었다.
약국 배달앱을 다운로드하고 의사가 처방해 준 항생제를 검색해 보니 찾을 수 있었다. 부랴부랴 결제를 마친 30분 후, 누군가 현관 초인종을 띵똥 누른다. 항생제가 배달됐다. 인도의 좋은 점이라 할만한 것은 인건비가 너무 싸서 조금 돈을 들이면 나의 발품과 손품을 덜어줄 누군가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검색 몇 번으로 피검사, 의사와 상담, 약 처방까지 다 받았다.
아이의 열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열이 오르면서 설사도 계속했다. 차도가 없는 것 같이 보일 때마다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아이의 증상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때마다 의사는 빠르게 답장을 보내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처방받은 항생제를 일주일 간 먹은 뒤 아이는 깨끗이 나았다.
아직도 아이가 아팠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의 열일로 우리나라는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처방도 확실한데 인도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름시름 원인 모르고 아프다. 빈부격차가 너무 커서 가난한 사람들은 약조차 제대로 못쓰고 아픈 채로 길거리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바이러스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의사와의 빠른 커뮤니케이션과 30분 만에 배달 오는 약국앱이 아이를 낫게 했다. 하지만 너무나 편리해서 좋다는 감탄은 쉽게 나오지 않는 이곳은 인도다. 이런 편리함은 자주 누리지 않아도 좋으니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