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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Aug 29. 2023

아그라 여행기

드디어 가 본 타지마할

 인도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타지마할은 숙제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인도를 대표하는 너무도 유명한 건축물이기도 하고, 아마도 주재원 생활이 끝나고 인도에 다시 여행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인도에 있을 때 가봐야 하기 때문이리라.


 내가 인도에 도착한 2월 말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타지마할 가기 좋은 날씨였지만 이사하랴 적응하랴 어수선하게 지내다 보니 시기를 놓쳐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다 남편 회사에서 출장 오신 분을 케어해야 할 일이 있어 그 핑계로 다녀와 보기로 했다.


인도는 큰 나라라 첸나이나 벵갈루루 등 타 지역 사는 한국 사람들도 비행기 타고 구경 온다고 하는데 나는 델리NCR 지역에 사니 주말 1박 2일이면 충분한 일정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인도의 옛 수도 아그라(Agra)로 떠나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세 시간 정도 달려 해가 질 무렵 아그라 포트(Agra Fort)에 도착했다.


 아그라 포트는 타지마할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곳. 영국 식민지가 되기 전의 이슬람 왕조인 무굴 제국의 샤 자한 황제 때 대부분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에 쓰인 붉은 사암의 색깔 때문인지 돌로 지은 성이지만 따뜻하게 느껴졌다. 성의 주위로는 지금은 물이 없는 해자가 있고, 그 해자를 야무나 강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예전에는 그 강에 악어들이 살고 있어 아무나 쉽게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균형과 대칭, 그리고 정교한 조각이 정말 아름다웠던 이슬람 건축 양식의 아그라 포트

 샤 자한 황제는 죽기 전 이곳의 감옥에 8년 동안 갇혀 있었다고 한다.


 죽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너무나 그리워해서 그녀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타지마할이다.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짓느라 국고를 탕진하고 수많은 백성을 혹사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성 안의 감옥에 가둬 버렸다고 한다. 샤 자한은 아들에게 제발 타지마할이 보이는 곳에 있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말년에 시력을 거의 잃었던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직접 볼 수 없어 유리창에 비친 작은 타지마할을 보며 왕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그라 포트에서 보이는 타지마할

 아그라 포트와 타지마할을 하루에 다 보기는 조금 힘들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첫날은 아그라 포트, 둘째 날은 타지마할에 가기로 하고 첫날은 타지마할 근처의 호텔에서 묵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타지마할에 입장했다.

아치 문 너머로 그림처럼 보이는 타지마할. 파란 하늘과 구름과 함께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답다.

 타지마할로 가는 정원을 지나 아치 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치 모양의 액자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타지마할이 내 눈에 가득 들어왔다. 파란 하늘과 조각구름,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타지마할은 하늘 어디에선가 갑자기 붕 떠오른 보석과 같이 5월의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지만 그보다 더 눈이 부셨고, 사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우아함과 기품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 큰 건축물이 웅장하다는 느낌 없이 우아하고 고상해서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 같은 보석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일까. 나의 첫 이슬람 문화권 여행지였던 튀르키예에서 아야 소피아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부드러운 곡선의 돔 지붕,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기둥, 가까이 가서 자세히 봐야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의 조각들이 주는 시각적인 평화로움과 안정감이 너무나 좋아 아야 소피아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햇빛에 반짝이는 타지마할은 땅에서 우뚝 솟아난 느낌이 아닌 마치 구름인 것처럼 하늘에 걸려 있었고, 그 반짝임 때문인지 백색의 건축물이 차가운 느낌 하나 없이 따뜻해 보였다. 실제로 타지마할은 빛이 통과할 수 있는 대리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해의 위치에 따라, 달빛에 따라 그 빛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한다. 달빛 아래 빛나는 타지마할의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대리석으로 지었지만 차갑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타지마할은 인도 사람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외국인과 인도인의 입장료는 무려 20배 차이 난다.

 타지마할은 22년 동안 만들었는데 그 당시의 기술로 이 정도 큰 건축물을 22년 동안 지은 건 엄청나게 빠른 작업 일정이었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외국에서 온갖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불렀으며 코끼리들은 강가에서 대리석을 실어 날랐다고 하니 공사를 위해 동원된 백성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 백성들은 노역에 대한 수당이나 제대로 받고 일을 한 것일지.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을 지을 당시 동원된 백성들에게 노역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서 계몽 군주라고 하는데, 국가 재정이 파탄날 정도로 타지마할에 모든 걸 다 쏟아부은 샤 자한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그 백성들의 피땀과 목숨으로 지어진 타지마할을 마냥 아름답다고 감탄만 하고 있기는 어딘가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기계로 찍어낸 것 같은 정교함이 돋보이는 조각들. 위아래 띠를 이루고 있는 문양은 루비를 하나하나 조각해서 벽에 끼워 맞춰 넣은 것이라고 한다.

 죽은 왕비를 너무 사랑했고 그리워한 나머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었다는 로맨틱한 스토리에 마냥 감동받을 나이는 이제 지나서인지, 타지마할 곳곳의 정교한 조각과 문양을 볼 때마다 그 오랜 시간 힘든 노역을 감당하며 제대로 보상받지도 못했을 수많은 사람들을 먼저 떠올려 보게 된다. 그들의 그 수고스럽고 고단했던 삶은 어찌 보상받았을까. 인도 물가치고는 아주 비싼 외국인 입장료를 받는 타지마할 때문에 아그라 사람들은 먹고살 수 있기 때문에 후대를 생각하면 그 노고가 아주 헛되지는 않았던 걸까. 그러나 그 입장료의 많은 부분이 타지마할이 위치한 땅의 영주에게 간다고 하니, 인간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결국 고통받는 건 평범한 백성들이라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아그라가 있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나 수입이 인도에서도 평균 이하라고 하니,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고는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나름 여러 나라를 여행 다녀 유명한 건축물은 꽤 많이 보았는데,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과 감동을 전하면서 위화감을 주지 않는 건축물은 타지마할이 유일한 것 같다. 성당이나 사원은 그 종교를 믿느냐의 여부에 따라 보는 사람마다 감동이 다를 것이고, 성이나 탑은 공격에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져 범접할 수 없는 견고함과 웅장함이 더 먼저 느껴질 텐데, 타지마할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왕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지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 때문에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며 역사 속으로 스러져 갔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의 마음은 시대와 신분을 떠나 모든 사람들에게 오롯이 전달되기 마련이니 그 감동이 후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말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고생을 너무 폄하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만큼 타지마할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왕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탄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한 번이라도 후대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그이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1박 2일의 짧은 아그라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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