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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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christmas cactus가 다시 꽃을 피워내 다이닝룸의 창틀이 환했습니다. 우여곡절 많았던 내 여행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환하고 따뜻하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때로는 호들갑스러운 말 잔치보다, 말없이 건네는 은은한 미소가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꽃잎 앞에서 새삼 깨닫습니다.
이번 여행은 내게 여러모로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어깨 부상을 당한 J언니와 함께 urgent care에 갔을 때, 언니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나와 L씨는 한마음으로 애를 태웠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건, 우리 역시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도 상대방을 온전히 헤아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빌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노력은 어쩌면 인간의 최소한의 도리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여섯 명 모두에게 영어는 제2의 언어입니다. 배우고 익혀야 했던 어려움을 이곳에서 모두 겪었으리라 짐작했기에 서로에게 있는 한국말 액센트나 부족함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환경에 따라 ‘잘함’과 ‘못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결코 타인을 얕잡아보거나 경멸할 권한이 되지는 않습니다. ‘잘함’과 ‘못함’의 잣대가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다른 상대의 비수가 자신을 겨냥하는 일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든 영어든,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뿐더러 결코 누군가를 공격하는 잘 벼른 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는 말입니다.
어떤 한국 단어는 모르기도 하고, 어떤 한국 단어는 철자를 틀리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게다가 한국말을 잘 쓰지 않아서 생기는 일입니다. 아, 그래요. 배움이 짧아서일 수도 있겠네요.
한국 말을 유창하게 하고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경멸이나 무시의 암시를 면전에서 던진다고 가정해 봅니다. 이 가정이 제가 위에 늘어놓은 중언부언에 보충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J언니의 사고 이전부터 내게 열대성 피부질환이 생겼습니다. 내가 준비했던 알러지 약이 듣지 않아 M씨가 건네 준 약까지 먹었습니다. 아시다시피 J언니와 urgent care에 함께 갔고, 그곳에서 치료약을 처방 받아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극심한 가려움증에 수포가 점점 커지고 위로 번졌습니다. 게다가 어지럼증까지 생겨나니 여행을 중도에 포기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었습니다. 상큼하고 명랑해야할 여행의 분위기를 흐리게 만들까 염려되어, 일행에게 털어놓기를 주저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다 아시게 되긴 했지만요.
마지막 저녁 식사(farewell dinner) 때, 무심히 내게 날아온 몇 마디의 말들은, 그간의 혼란스러움과 불편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긴 일이 있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야 내리는 기차’에 함께 탄 승객들입니다. 짧은 기차 여행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겪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말자고 다짐하며 살고 있지만, 이 인생모토가 무색하게 이런 마음앓이에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애써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이건 어쩌면 아파서 터져 나오는 비명일지도 모릅니다. 통제하기 어려운 비명 말입니다. 뱉어낸다고 당장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절실한 고백입니다. 또다시 찔리기 싫다는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도 타인을 함부로 대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새깁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공부’라는 과제를 받아듭니다.
식탁 앞에서 경건하게 기도하던 일행들을 존중(respect)합니다. 음식이 내 앞에 오기까지의 여러 손길을 감사해 한다고 들었습니다. 곡식 한 톨을 위해 흘린 땀방울을 기억하는 일만큼이나, 내 입에서 나가는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 또한 숭고한 일임을 믿습니다.
산뜻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는 더 큰 공부를 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말없는 미소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J언니의 빠른 회복을 빌며 어렵게 이 글을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