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매우 춥다

강풍, 돌풍 그리고 눈

by 사라의 여백












뉴욕에서 남쪽으로 운전 길 5시간 걸리는 이사를 했다. 벌써 5년이 지난 옛일이다. 이곳도 겨울이면 춥고 눈이 온다. 하지만 뉴욕에 비해서 덜 추울 뿐만 아니라 이사 와서 사는 동안에 폭설이 내린 적이 없다. 봄은 아직 기미도 안 보이고 까마득한데, 사방에 쌓인 눈들이 여태 그대로다. 기온이 낮으니 눈이 녹기는커녕 눈 위로 아이스링크장을 만들어 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 시설(공원)이 있다. 개 산책을 하기에 딱인 곳인데 이번에 내린 눈으로 필드가 눈밭이 되었다. 기온이 너무 낮아 눈이 녹을 틈이 없다보니 눈 위로는 반들거리는 빙판이다. 네 발로 움직이는 동물들과는 달리 두 발로만 몸을 지탱해야 하는 인간들에게 빙판은 쥐약이다. 이런 인간의 사정을 알 리없는 우리 집 개 두 마리, 후추와 생강이가 빙판 쪽으로 돌진한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인간의 저항이 끝내 날카로운 금속음의 목소리를 동원하기에 이른다.


오늘 최고 기온은 섭씨 영하 6도, 최저 기온은 영하 12도, 현재 기온은 영하 10도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라 춥긴 되게 추운 날씨다. 일기예보를 알려주는 앱을 켜고, 전에 살던 동네를 검색한다. 역시 예상대로 이곳보다 기온이 낮다. 추운 날씨 피해서 이사를 온 보람도 없이 어쩌자고 이렇게 춥냐면서 괜한 투정을 부리던 볼멘 입술이 쏙 들어간다.


북미의 동부 쪽에서 살던 사람이 서부로 이사를 하면, 첫해 겨울은 덥게 느껴진다고 한다. 설마 덥기까지 할까 싶지만, 내의를 입지 않고 겨울을 난다는 소리다. 그러다 그 다음 해의 겨울은 예년과 같은 온도인데도 유독 춥게 느껴져 내복을 다시 입는다.


이 사실은 우리 몸의 적응상태를 증명하는 과학적 현상이다. 추운 곳에 살면 열을 내는 ‘갈색 지방’이 활성화되고, 영하권에서 단련된 몸이 기초 대사량을 높이고 열 생산을 극대화해 둔 상태가 된다. 서부의 첫해 겨울을 나게 되는 몸은 아직 동부의 겨울 모드를 장착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서부의 온화한 날씨에 적응을 하면서 우리 몸은 영리하게도 에너지를 많이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몸이 ‘에너지 절약 모드’로 바뀌는 것이다. 기온이 조금 내려가도 몸은 이를 심한 추위로 인식을 하고 작년에 안 입었던 내복을 다시 찾게 된다. 만약 성급하게 내복을 없애버렸다면, 다시 사거나 추위에 떨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고작 5시간 아래로 내려온 내 몸이 이 겨울을 추워하고 있는 것도 과학적 현상에 기초한 것일까?


추위를 더 타는 이유를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이것이 몸의 영리한 적응 때문이라는 사실은 작지 않은 위로가 된다. 아니,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무엇이든 여전히 춥다, 매우 춥다. 중늙은이 얼게 생겼다. 그리하여 오늘도 집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