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새 또 이만큼
자랐습니다

진정한 위로

by 사라의 여백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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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방암 환자입니다.’

진단과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고 반 년이 지난 지금, 나와 암의 관계를 글자로 내뱉어 보는 첫 문장입니다.


나의 발병 사실을 알게 된 당신이 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걱정어린 그 위로가 당황스러울 만큼 불편했습니다. 이 불편함의 이유가 나의 속좁은 마음이거나 비뚤어진 심성 때문일 거라는 자책이 일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책은 불편함을 더욱 증폭시켰고요. 발병사실을 더이상 소문내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것이 나를 방어하고 당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 속담인 ‘병은 소문을 내야 낫는다’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후 묻지 않은 말에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구실을 핑계 삼아 발병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털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위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나의 편협함 때문이 아니라 좌절이 원인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명쾌한 진단에 눈이 번쩍 뜨였고 동시에 가슴도 환하게 열렸습니다. 그간 나를 괴롭혔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불편했던 당신의 위로를 이제 나의 좌절 위로 포개어 놓습니다.

불편의 원인이 좌절이었다는 것을 알고나니 내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근합니다. 가볍기까지 합니다. 당신의 위로가 불편했던 나는 어느새 또 이만큼 자랐습니다. 어설픈 나의 위로 때문에 좌절을 견뎠을 또 다른 당신을 뒤늦게 기억해냈습니다. 당신에게 조용히 안부를 건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뵈었을 때, 거동 못하고 누워 계신 채 말씀하셨습니다. “마비가 다리 쪽부터 위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제 가슴까지 왔네. 얼마나 다행이야. 위에서부터 내려오지 않은 게.” 선생은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선생님이 안 계신 세상을 삽니다.’ –김창남 교수의 신영복 선생님 추모글 중에서


직접 뵌 적이 없는 신영복 선생님을 나는 이렇게 종종 만나고, 그의 등불로 길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