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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S Sep 21. 2020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와 삼겹살 그리고 레몬수

포근한 포만감, 든든함이 필요할 때.

오늘 문득 달력을 보면서, 아 9월도 끝나가네, 하고 느꼈어요. 그러고 보니 2020년도는 반을 훨씬 넘어 이젠 3분기를 지나가네요. 연초에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던 게 정말 어제만 같은데 언제 또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요.


올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다들 자기만의 몫을 감당하며 오롯이 버티고 있죠. 있어온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속하는 힘의 대단함을 절절히 느끼는 요즘입니다. 저는 사실, 그다지 엄청난 일들을 계획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그 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건 아닌가, 가끔 상심하곤 했어요.


이런 기분은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겐 내보이기가 어려운 것이라 꽁꽁 덮어서 마음 깊이 넣어두곤 했는데, 어둡고 습한 곳에서는 무엇이든 자라나기 마련이라 쿡 하고 마음을 찔려 돌아보면 그건 언젠가 제가 몰래 숨겨놓았던 그 침울한 기분들이더라고요.


모르는 체하다 보면 며칠간 마음엔 비가 내리고 으레 오랜 비 이후가 그렇듯, 가시덤불이 쑥쑥 자라나 나를 아프게 옭아매는 날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 하나가 언젠가, 제가 무어라 말을 꺼내놓은 적도 없는데 문득 메시지를 보내선, ‘그럴 땐 가만히 명상을 해봐.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주 잠깐이라도 너의 마음을 걱정으로부터 떼어내라는 이야기야.’ 하는 거예요.


맞는 말 같았어요. 어차피 아플 거 무작정 계속 아프자- 하면 어느 순간 너무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진통제로 고통을 낮추고 잠시라도 편안히 잠을 청하듯이, 저도 제 마음에 잠시 삼삼한 위로를 보내기로 합니다.

제 자신이 괜히 별로라고 느껴질 때면 좋아하는 것들을 일부러 멀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스스로 벌을 주는 건지도 몰라요.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잠재울 포근한 것을 만들기로 했으니까. 예쁘게 생긴 감자를 골라봅니다.

전자레인지에서 익히기 좋게 숨덩숨덩 자르다 보면 마음속의 걱정들도 근심들도 잘게 잘게 작아지는 것만 같아요. 물을 쪼르륵, 적셔 짠 깨끗한 행주나 키친타월을 덮어 6분 돌려주면 포슬포슬 익습니다. 감자를 익히면서 계란도 삶아주세요. 완숙으로요. :)

마가린이나 버터 한 스푼 크게 떠 넣고 으깨준 후 삶은 계란 두 개를 송송 까넣어요. 계란을 예쁘게 부쳐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계란을 예쁘게 삶아 예쁘게 까는 것입니다. 다행히 오늘은 모두 신나게 으깨줄 거니까. 조금 모나게 삶아진 달걀도 괜찮아요.

다시 한번 더 열심히 으깨주면 계란은 씹히기 좋게 감자는 보들보들 적당히 섞이는데, 이게 또 마음에 묘한 기쁨을 주거든요. 후추와 소금을 살살 뿌려 이리저리 섞으며 생각하는 것, ‘오늘 하루는 든든하겠네.’

빵에 마요네즈와 버터를 각기 발라 감자 샐러드를 듬뿍 올려줘요. 어디도 하나 모자란 곳 없도록.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거니까.

샌드위치를 살 때면 빵 모서리까지 내용물이 꽉 차있는 걸까? 하고 고심하곤 해요. 사소한 정성이 조금씩 비어버린 마음을 위로하도록, 우리는 꼼꼼하게 가득가득 얹기로 해요.

냉장고에 항상 만들어 두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파 양념장이에요. 간장 2, 물 2, 설탕 1. 마치 누군가 내 하루의 감정을 계량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간장같이 짜디짠 마음을 두 스푼 졸졸. 무미건조한 일상처럼 물을 두 스푼 쪼르륵. 하지만 달콤함을 포기할 순 없으니 한 스푼 툭 쏟아 넣는 거예요.


저는 파 썰기를 정말 좋아해요. 울고 싶을 때도 썰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도 썰고 심심할 때도 썰어요. 칼이 도마를 타닥타닥 내리치는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가득 썰어놓은 파는 이렇게 양념 장안에 우르르 쏟아 놓아요.

감자 샐러드 샌드위치는 반으로 잘라 접시에 담아요. 냉장고 안에 찌개를 끓이고 남아있던 고기는 구워서 올려요. 양념장을 슬쩍 뿌려주고 파를 건져내 함께 먹기로 했어요. 전자레인지에 4분 돌린 양배추가 아삭하고 맛있는 한 끼 완성이에요. 딸기는 순전히 장식이었는데, 빨간 한편이 있으면 예쁘겠다 해서 올려봤어요. 레몬을 조각조각 잘라 물병에 담아둔 어제의 나를 칭찬하며 레몬수 한잔. 그냥 물일 뿐인데 상쾌한 기분이 됩니다.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을 모아 오로지 나를 위한 한 접시를 만들고 나면 다른 누군가 보다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조금 느껴진다고 할까요, 나의 평범한 부분 부분도 모여 든든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어가길. 다른 누가 아닌 나를 위해서.


내일이 아니라 오늘, 평범하지만 든든한 한 끼 하시고 스스로에게 포근한 한마디 해줄 수 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멀리서 기원합니다.


그럼,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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