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너무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말라하셨다.
‘가만 보면 S 씨는 굉장히 정이 많아요.’ 대화의 물꼬를 터준 문장은 얼핏 보면 그저 칭찬 같았다. 하지만 흘러간 대화의 결말은 사뭇 달랐다. 내가 쓸데없는 순간 부적절히 정이 많아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한다는 결론에 이르자 어안이 벙벙했다. 에너지를 낭비하고 남을 탓하느니 처음부터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곱씹으니 맞는 말이라 벙찐채 앉아 한참을 숨 고르기나 했다.
인생 선배로 내심 존경하는 그녀는 화법이 다소 거칠지만 빈말을 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람이다. 말에 수식어가 적고 발화 한 문장의 길이가 짧다.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또 신뢰하기 때문에 그날 그녀의 독설도 쓰지만 달게 들었던 듯하다.
그녀가 본 나의 모습은 어째 휘청이는 갈대 같았던 모양이다. 상담을 요청하고 조목조목 써 보냈던 메시지를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누가 이렇게 말해서, 이런 말에 이런 감정이 들었고, 이런 조언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있어서’ 따위의 표현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기나긴 나의 편지를 다 읽은 후 그녀가 주었던 간단한 대답은 ‘사람에게 너무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말라 ‘, ‘그저 스스로 알아서 잘하라 ‘는 것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당신에게 기대려는, 당신의 조언을 기대하는 내게 너무 잔인한 처사가 아니오? 하고 속으로야 발끈했으나 대화의 끝에 얻은 결론은 모질게도 그것이 또한 맞는 말이네 하는 끄덕임이었다.
매분 매초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성격. 얼핏 보면 이치에 맞는 일처럼 보인다. 그 사이사이 주변의 시선과 의견이 섞이는 일은 흔하다. 선행된 사건 속 내가 차지한 과실이 어느 정도 퍼센티지로 존재하는가는 대부분 스스로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과를 물고 늘어지는 버릇은 간혹 ‘탓’을 하기 위한 전제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내 관계와 삶을 비틀어 놓는다. 남과의 관계뿐 아니라 나 자신과도.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끝이 없다.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준대도 그때 한 선택을 답습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여전히 후회는 쌓인다. 그러니 ‘알아서 잘’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에두른 충고였으리라. 상처가 용서보다 거창해 도저히 되지 않을 때는 애를 써서라도 퉁치고 넘어가려고 한다. 오늘의 감정을 그저 버텨야 할 때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조차 인과 찾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시간은 나날이 길어지기만 할 것이다.
마음을 다독이는 일은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으므로. 대화를 곱씹으며 작은 알배추를 다듬었다. 줄기의 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종종 채를 썰어 된장과 버무렸다. 연한 잎은 송송 썰어 냄비에 켜켜이 쌓았다. 육수를 붓고 마늘을 풀고 퍼내어 뭉친 된장을 살살 섞으며 하루 종일 맴돌던 억하심정을 흘려보냈다. 그저 스스로 알아서 잘. 순간 매정했던 충고는 슴슴한 배추 된장국 한 그릇이 되었다. 하루의 끝에 김 오르는 밥 한 공기면 되었다. 그럼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