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Mark 14:53-65
처음에는 전에 나타났던 사람들처럼 그 사람도 잠깐 인기를 구가하다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예전엔 성전에 오던 사람들이 다 그를 따라 가더군요. 언덕 위로, 바닷가로 수많은 인파가 항상 뒤따랐습니다. 그는 매사에 부정한 자들과 가까이 어울렸습니다.
메시아라면 그에 걸맞은 품위와 자격이 있어야 마땅한 것 아닙니까? 그는 우리가 지켜오던 모든 것들을 무시하며 도리어 우릴 외식하는 자라고 비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은 항상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말로 우리는 난처하게 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죄인들은 그것을 들으며 고소해하고 통쾌해했지요. 감히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능욕하다니...
그에 대해 나쁜 소문들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맞는 억지 증언과 증인들을 꾸몄습니다. 앞뒤와 이치에 맞지 않는 것들도 물론 많았지만 당시에 그건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집요한 질문으로 우리는 마침내 그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실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로 드디어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해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거대한 종교권력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정결함을 중시하며 죄로부터 자신들을 구분하는 것을 경건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율법은 사람을 정결케 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기보다는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형식뿐인 신앙을 외식이라 비판하시며 부정한 자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거룩이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가 변화시키는 것이 참된 거룩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새로운 율법은 종교지도자들이 누려오던 권력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 덧글
부활절을 앞두고 남편이 고난주간 묵상집 작업을 했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부탁해서 저는 글을 쓰고 남편은 해설을 덧붙여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고난을 묵상하며 그분 앞에 더욱 나아가는 시간을 갖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시작으로 일주일간 7명의 인물들을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