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2
결혼 전, 가장 공감되었던 조언 중에 하나는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나에게 웬만한 것들은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적당한 선에서 결정하는 편을 권했다. 그러나 이 희대의 조언은 그러려니가 안 되던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한 마디였다. 결론적으로 결혼은 불가피하게 더 늦어졌지만 과거의 내가 이 조언을 새겨들었던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도 칭찬해주고 싶다.
코드가 맞는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리고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어 주는가. <미생>에서 장그래는 자신을 그저 계약직 나부랭이로 취급하지 않고 팀원으로 받아주고 이끌어준 영업 3팀의 사수들 덕에 진정한 상사맨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회사 좋아, 는 곧 우리 상사 좋아, 라는 뜻이라고 하지 않던가. 결국 회사, 학교, 교회 등등 사람들이 모이는 그곳이 좋다는 건 그 구성원들이 좋다는 의미가 된다. 여러 전쟁 이야기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자신의 주군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바로 그래서다. 나도 그렇다. 전에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 모교회에 있는 나의 친구들과는 오랜만에 연락하게 되어도 참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함께 공간과 시간을 나누며 하나가 되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디 그리 쉽기만 한가. 매번 그렇게 된다면야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돌아와 위아더월드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건 그야말로 드문 일이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이 양적으로, 질적으로도 훨씬 많은 가운데 생활한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남편도 연고도 없이, 딱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해가며 새로운 지역에서 보낸 첫 해가 거의 저물어 가고 있다. 이 일 년의 시간 동안 내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가였다.
먼저 사회생활의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2020년 이전으로 원상 복귀되었다. 결국 2015, 2020년이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시기였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원래의 자리, 큰 테두리 안에는 포함되지만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그 자리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지 못해서 슬프거나 서운하다기보단 지난 그 두 해동안 나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당시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자신만의 대가나 이기를 바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서로의 업무를 격려하고 도와주며 서로의 삶을 나누려 노력했다. 나에게는 그 시간들이 참 귀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나는 앞으로의 관계들에서 그때 배웠던 교훈들을 실천하면서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일 테지. 이곳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여전히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또 감사한 것은, 여기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는 것이다. 동 교과 선생님들 모두 크리스천인 것부터가 은혜 위에 은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관계에 있어 나로 더욱 고민하게 한 것은 앞서 언급한 사회생활보다는 신앙생활의 비중이 더 컸다. 결혼으로 나의 홈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린 지 반년만에 또 다른 곳으로 나는 신앙생활의 터전을 옮겨오게 되었다. 먼저 겪은 6개월은 어차피 떠날 예정이었기에 관계 확장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고 그래서 오히려 부담이 없었다. 올해의 생활은 달랐고, 달라야 했다. 그러나 나의 위치는 말 그대로 주변인이라 관계에 있어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새 신자는 아니지만 이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교역자 가족이라 공식적 소속 모임에 배정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싱글도 아닌데 나이는 많으니 청년 때처럼 젊은이들과 교제하기도 어렵고, 내가 딸 뻘이 되는 중년 어머니 자매님들과도, 자녀도 없이 아기 엄마들과 교제할 수도 없었다. 그 전에는 법정 청년의 나이를 뛰어넘은 싱글들이 교회에서 최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위태로이 몇 달을 보냈는데 그 와중에 두어 달 함께 점심을 먹으며 조금씩 아이스브레이킹을 해나가던 한 자매님이 갑자기 뇌종양으로 쓰러지셨다.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늘 만남의 자리를 갖던 유치부실에 다시 들어갈 엄두가 안 났고 그러면서 난 심적으로 좀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남편이 교육부서 중 청년회를 담당하게 되었다. 청년회에서 그냥 가만히 말씀만 들을 테니까 같이 있게 해달라고 청년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그들은 선뜻 수락해주었고 더운 여름날에 우리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는데도 기꺼이 와 주었다. 수련회에서 각자 하나님을 만난 경험과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한 생각들을 깊이 나누는 것들을 보면서 이들과 함께하며 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여러 사정으로 교회에서 어려울 때마다 우리에게 감사가 되고 소망을 품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청년들의 존재였다. 처음에 열 명 내외였던 청년회 정규 집회 참석 인원이 하나둘씩 늘어 이제는 테이블 하나를 더 놓고 앉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들은 말씀이 도움이 되었다거나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좋겠다 툭 던지는 말들이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의 친구 Gene의 존재다. 처음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 때 괜찮아!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했던 것은 그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Gene은 우리 집에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온다. 어쭙잖은 솜씨로 내어 놓는 저녁 식사를 군말 없이 먹어준다. 하루 건너 야근하는 일정과 몰아치는 격무에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때도 적잖을 텐데 밥 주는 사람이 제일 좋다는 적당한 핑계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근 40주 가까이 한 상에서 먹고 마셨으니 불과 일 년 사이에 지난 20년의 시간보다 더 자주 보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찐친이 가까이 있는 걸 타지에서 왔던 나와 비슷한 처지의 교역자 가족들은 엄청 부러워했었는데 정말 그럴만했다. Gene이 매주 찾아와 주지 않았더라면. 여러 면에서 나는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가. 일도 환경도 정확한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제일 힘들다. 반대로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에 대한 답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사람이다. 이건 사람을 의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에게 좌지우지당한다는 말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비단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내 인생 자체에 큰 영향을 차지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별 미련도, 관심도 없는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면 꽤나 믿을만한 진술 아니겠는가. <미생>에서도 매뉴얼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매뉴얼과 체제, 성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그분이 허락해주신 사람들을 통해 사랑과 인내를 깊이 배우며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가올(아니, 어쩌면 이미 다가온?) 어려움들을 잘 넘기고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