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인상에 대하여
사람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나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서사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다. <지니어스> 시리즈나 <소사이어티 게임>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 유튜브에서 초반 풀버전을 풀어준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런데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이전에 봤던 프로그램들에서 조금 더 세련된(?) 혹은 정돈된(?) 구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어서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창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중간에 나를 굉장히 오랫동안 머물게 만든 지점이 있었다. <더 커뮤니티>에는 저녁에 익명 채팅으로 토론을 하는 규칙이 있다. 참가자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찬반 중 하나로 입장을 정하여 토론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미리 그 주제에 관련된 사전 질문을 주었다고 한다. 그날의 주제는 계급이었고 질문은 각자 본인의 연봉에 해당하는 구간을 묻는 것이었다. 연봉 5000 이하가 전체 참가자 중에 1명, 그 외는 모두 5000 이상이었고 심지어 3억 이상 구간에 해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밌다고 열심히 보다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그들과의 거리감이 갑자기 확 체감됐다.
내 구간은 저기 없..네? 아.. 연봉 높은 사람들이 엄청 많구나. 저기 감히 끼지도 못하는 내가 이걸 즐기고 있는 게 맞나? 와.. 근데 다들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리고 저런 사람들이 계급을 논한다고? 그게 말이 되냐.. 아니, 근데 나도 근 20년을 일하면서 살았는데... 이건 뭐지?
그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있었다. 급여명세서 서류가 필요해서 조회를 해봤는데 확인한 급여가 내 예상과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급여는 교육 경력에 따라 호봉제로 산출이 되는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교육경력 연차와 실제 교육경력으로 인정되는 햇수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일한 모든 기간을 나는 100% 인정받지 못한다. 교원자격증 취득 전 경력, 초등교육경력, 시간제기간제 경력등은 모두 감산된 적용률로 계산이 된다. 올해, 작년보다는 한 호봉이 승급되어 호봉 획정을 받아서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 했는데 차 떼고 포 떼고 나니 한참 달라서 아 이거 어떡하지 했었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당분간 수습 기간을 거쳐야 했기에 우리의 생계수단은 나의 급여가 유일하다, 고 생각했다. 대전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러 다녔고 그래서 그 감산되는 적용률이 아쉽긴 했지만 부담되진 않았는데 올해는 우리 가정과 남편을 위해서 내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지라 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앞으로 우리의 경제 사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전담대책상황실을 세워 겁나 맷돌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 생각에 머물러 있던 나의 뒤통수를 씨게 가격하는 사건이 닥쳤다. 우리 부부의 DEAR FRIEND인 말레이시아 페낭 선교사 가정이 비자 문제로 급전이 필요하여 기도 부탁을 하는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번 주일 예배에서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헌금을 사용할 방법을 함께 나눈 터였다. 남편은 우리가 기도한 내용의 응답이라 분별이 된다며 특별헌금을 하자고 말했고 우리는 바로 송금했다.
결국 그 메시지는 너 정신 차려라라고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인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네가 가진 돈을 계산하고 걱정하며 앞일을 궁리하는데 머리를 쓸 게 아니라 주를 위한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말씀해 주시는 거였다. 마치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의 비유에서 그가 힘쓰고 애써 곡식을 모았는데 오늘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 하면 어찌 되겠느냐 물으시는 음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 몇 천도 아니고 고작 몇 백 되는 돈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고 낙심하고 전전긍긍해할 일이 아니었구나.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근거리에 있는데.
<더 커뮤니티>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이젠 좀 낯설어졌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가자들과 시청자들 모두에게 이렇게 자신의 실상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나를 WIN한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하겠다. 또한 한껏 의연해보려 애를 쓴다고 썼지만 나 역시 물질 앞에 여전히 취약하고 졸렬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도구이기도 하다. <더 커뮤니티>의 최종화가 기대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면 또 어떠한 나의 모습을 알려줄 것인지 궁금해졌으니까.
+ 그래서 결국 우리는 웨이브 정기결제를 했다. 첫 달은 100원이라길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