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18
많은 작가들이 말한다. 갑자기 영감을 받아 글을 쓰기보다는 매일 출근하듯이, 일상으로 어떡해서든 하루에 정해진 분량만큼 꾸준히 써야 진짜 글이 된다고.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어찌 사람이 그렇게 되던가. 매일 글 쓰는 것보다 삼시 세끼 밥 해 먹는 게 더 쉽다. 밥은 안 먹으면 배고프지만 글쓰기는 미뤄도 별 상관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늘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이상, 나의 이야기다. 자조 같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늘 글 쓰는 이로 살기를 꿈꾸지만, 그려려고 나름(?? / 정말 나름인지 잘 생각해 봐)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마주하는 실상은 열지 않은 맥북과 갈수록 늘어가는 OTT 플랫폼 개수다.
라고, 저 첫 문단을 써놓은 것이 지난 5월이다. 그 후 나는 유방 검진에 맘모톰 시술 이후 회복기를 거치며 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목소리를 잃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방학을 맞았다. 꼼짝없이 여름 감기에 시달리며 폭염과 열대야 속에 이제 살만해졌다 싶으니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는 컨디션 난조와 이상 기후에 또 한 번 속절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나는 여러 시도를 멈추지는 않았다. 국제도서전에서 새로운 작가님들의 작품을 만났고 북멘토링으로 올해만 벌써 8권의 책(공식적으로)을 읽었으며 틈틈이 에세이며 각종 이야기들도 읽었다. 나오는 건 없어도 넣는 건 일단 욱여넣어 보자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북멘토링을 하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는 읽어야 할 책들을 먼저 도서관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멘티가 신청한 책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책을 다 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북멘티 친구가 8월에 읽을 책으로는 <파도의 아이들>을 신청했는데 올해 나온 신간이라 어떻게 구해야 하나 알아보던 중. 작가님의 북토크 행사가 고요서사에서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바로 신청을 했고 북토크 전에 내용은 알아야 하니 책도 함께 주문해서 얼른 읽었다. 부푼 마음으로 북토크에 참석했고 여러 즐거운 이야기들로 근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탈북 청년 멘토링을 통해 알게 된 사연들이 재료가 되어 지금의 소설이 탄생되었다 들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어떻게 되시냐는 물음에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이번엔 어떤 영감이 올지 기다리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자 한다 답을 주셨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지라 그냥 쓰는 것이 답인 줄 알지만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작가님의 사인을 받을 때 서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글 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난 좀 더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글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5월 학교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속한 관할 교육청에서 시행한 글쓰기 연수를 신청해서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학교 관리자분들 모두가 함께 이수하게 된 연수였다. 특히 교장님께서 큰 감명을 받으셨는지 책을 내자며 부장님들을 통해 이 연수를 신청한 모든 선생님들을 반(?) 강제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교직원 회의에서까지 책을 내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교장님의 발언에 나는 학을 뗐다. 연락이 왔지만 모든 연수에 다 참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히 발을 뺄 수 있었다. 이분은 정말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물성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걸까. 직권을 사용한 원치 않는 강요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오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이유로 써야 한다면 정말 단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걸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로는 삼을 수 있겠으나 그 시간을 통해 정말 내가 원하는, 쓰고 싶은 글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었다.
라고, 쓴 것이 방학 마지막 주에 남편과 더위를 피해 카페 나들이 가서 쓴 부분이다(이쯤 되었으면 이제 마무리를 해야 마땅하지 않겠니? 응??). 지난 시간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2024년 상반기를 지나며 내가 경험한 것들은 쓰고 싶은 글쓰기를 생각해 보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5월의 충격적인 사건도 그렇고, <파도의 아이들> 북토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주에 서울국제작가축제 함께 읽기 챌린지 덕분에 읽은 <소유에 관한 아주 짧은 관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마리아는 돌봄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스페인 여성이다. 고등 고육을 받은 것은 아니나 연인과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여러 책을 접하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 연인과 토론하며 나누었던 자신의 생각이 연인의 입을 통해 그의 이야기로 둔갑해 버리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마리아가 더 많은 자기 생각을 갖게 되자 연인은 불편해한다. 이처럼 '진짜'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authentic story. 이것이야말로 글쓰기를 추동하는 진정한 원동력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어야 진짜가 나온다. 이건 정말 써야겠다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야 글이 나온다. 그동안 내가 맥에어를 거들떠도 안 본 이유는 써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던 것인가.
어쩔 수 없지만 인정해야겠다. 요즘 나의 삶엔 큰 고민이 없는 것 같다. 물론 건강에 이상이 있어 고생을 하기도 했고 나의 일상이 매일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들이 여러 가지로 찾아오지만 그러나 내 인생을 고민하게 할 만큼 나를 뒤흔드는 큰 고생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하면 꼭 큰일이 찾아오게 되던데.. 걱정스럽지만... 인정해야 한다. 내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란 걸.
다윗은 여러모로 탁월하다가는 이유로 사울 왕의 미움을 받아 오랜 시간 쫓기며 살아야만 했다. 도망자의 신세로 국경 지역과 광야를 헤매던 그는 날이 저물면 하룻밤을 지낼 동굴을 찾았다. 그곳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들을 벽에 새겨 남겼고 우리는 그 기록들을 지금은 시편에서 만날 수 있다. 돌을 새겨 남긴 것이기에 그것을 '다윗의 믹담'이라 부른다. 누구 하나, 어느 곳 하나 의지할 데 없는 그가 구원을 구할 대상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었고 그분께 쏟아놓은 그의 절절한 심경을 통해 누군가는 위로를, 누군가는 도움을 받는다.
글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아직 내게 나만의 '믹담'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어렵고 힘들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 현재는 아무리 탈탈 털어보아도 내 안에 그렇게 아리게 새길만큼의 무언가는 없다. 그러나 브런치북 HATC SEASON 1에 썼듯이 뮤즈는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법.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당장의 믹담은 없어도 나의 단상과 기록들을 꾸준히 남기려 노력하고 여러 글들을 읽는 것이다. 그럼 언젠간 나도 My Mikhtam을 비로소 새길 수 있지 않을까.
But I will sing of your strength, in the morning I will sing of your love;
for you are my fortress, my refuge in times of trouble.
O my Strength, I sing praise to you; you, O God, are my fortress, my loving God.
- Psalms 59:16-17, A Mikhtam of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