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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Oct 29. 2024

해피할로윈

Heavern and the CIty Season 3 EP 19

외국어를 배울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언어권의 문화를 접하고 배우는 것이다. 문화적 배경을 알면 해당 언어에 대한 흥미도 커지고 좀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10월이 되면 마지막 주에 늘 할로윈('핼러윈'으로 써야 하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여기서는 '할로윈'으로 표기하겠다) 수업을 했다. 미국에서는 꽤나 크게 기념하며 보내는 날이라 영어권 기념일을 다룰 생각이 있다면 할로윈은 빼기 어려운 날이긴 하다.


나무위키에서는 할로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할로윈(Halloween), 10월 31일이다. 이는 가톨릭에서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인 '모든 성인 대축일(Sollemnitas Omnium Sanctorum)' 또는 '만성절(萬聖節)'을 11월 1일로 하는 것에서 유래하여, 그 전날인 10월 마지막 밤을 귀신이나 주술 등의 신비주의와 연관시킨 것이 기원이다. 할로윈을 휴일로 지정하는 나라는 없으며, 현대에 와서는 종교적인 성격보다는 상업적이고 신문화적인 기념일의 성격이 강하다. 서양에서 비록 휴일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잭 오 랜턴을 켜놓고 온갖 거창한 장식을 해놓는 모습은 거의 크리스마스의 마이너 버전을 떠올릴만큼 상당히 거창하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0년 전후부터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의 놀이공원에서는 꼭 기념할 만큼 젊은 세대들한테는 이미 핫이슈가 되었다.


한때는 귀신 분장하고 어지러운 파티의 여흥을 즐기기나 하는 그런 날을 뭘 그렇게 챙기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할로윈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일단 어린이들이 어른을 포함한 그 어느 누구에게든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기회인 TRICK OR TREAT이 재미있었다. 그들의 TRICK OR TREATING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얼마나 깜찍한 강요인가! 그리고 어린이들의 코스튬은 어른들의 그것과 같지 않아 징그럽고 혐오스럽기보다는 재밌고 귀여운 모습이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효과에 한 몫을 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어를 어지간히 싫어하는 학생이라도 이 'Trick or treat!' 한 문장을 실제로 발화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꼭 한번은 써먹어야 하는 기념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영어가 싫어도 사탕까지 싫은 건 아니니까. 게다가 할로윈에는 그래도 괜찮은 사탕을 선물로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2022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학기말로 내달려가는 지난함 속에 반응이 영 시원찮은 학생들과 조금이나마 재밌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그때도 다른 영어 선생님들과 함께 할로윈 수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할로윈 이틀 전인 토요일. 참사가 발생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니 긴급 공문이 이미 와 있었고 내용은 국가애도기간을 지정하여 선포하니 그 기간 동안 할로윈 관련 언급은 삼가라는 것이었다. 할로윈 수업은 물론 준비한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됐다. 그리고 작년까지 내 수업에 할로윈은 없었다. 아픈 순간에 대해 굳이 다시 꺼내지 않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을 나는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이라 여겼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한 YWCA 북멘토링에서 맨 처음 읽어야 했던 책이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였다. 그 전에도 초롱작가님이 원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기셨던 글이 있었다는 것과 그걸 모아 책으로 나왔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목도할 용기가 나에겐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찾아가는버찌책방을 모시게 됐던 터라 사장님께 부탁드려 직접 서점에 가지 않고도 작가 친필 사인본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펼친 책에서 참사 당시의 상황, 그 모든 것을 겪어내었던 희생자들과 가족들, 이태원 상인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당시 나는 그곳에 있었던 청년들에 대해 애도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굳이 왜 거기까지 갔냐는 질타의 마음이 있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이었는지 책을 읽으면서 철저히 깨닫게 됐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인파의 공포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고3 야자를 빼먹고 친구랑 광화문으로 2002 월드컵 우리나라 첫 예선전 응원을 나갔을 때였다. 앉아 있던 줄이 앞으로 이동하니까 앞쪽으로 모두 당겨 앉을 수 있다 생각했는지 뒷쪽 사람들이 밀어닥치는 바람에 말 그대로 "깔려죽을 뻔" 했었다. 친구와 나는 '아직 사람 있어요!'를 다급히 외쳤고 우리 줄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주어 인파의 역습을 막을 수 있었다. 참사는 내가 경험했던 상황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때도, 2012년 월드스타 싸이 시청 공연때도, 촛불이든 태극기든 각종 집회때도, 책에 나왔던 것처럼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임영웅 콘서트에 갔다가도 질서 유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크리스천으로서 귀신 분장의 할로윈이 여전히 달갑지만은 않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할로윈을 좋아하고 즐겼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무위키에서 서술한 것처럼 그들에게 할로윈은 평소엔 입지 못하는 다양한 복장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합법적으로' 일탈할 수 있게 명목삼게 해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어린이들의 TRICK OR TREATING을 거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내가 광화문과 시청 광장에서 2002년 월드컵과 2012년 싸이 공연을 즐겼듯이 젊은이들은 꽤 오래 전부터 이태원 일대에서 할로윈을 즐겼다. 초롱작가님은 그 증거로 16년부터 이태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이번 2주기 기념 북페스타에 전시해두었다. 그때는 2년 전과 분명히 달랐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인데.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것들이 발전했는데 왜 사회 안전망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인지. 슬픈 일이다.      


할로윈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마 다 다를 것이다. 작년에 이태원을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초롱작가님은 올해 2주기를 앞두고 안전하게 할로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북페스타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책을 접하고 그 일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석하여 북토크와 낭독회에 함께 했다. 누군가는 직접 다시 이태원에 가서 할로윈을 보낼 것이다. 누군가는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에서 희생자들과 함께 할 것이다.


나는 올해부터 다시 할로윈 수업을 하기로 했다. 할로윈의 유래를 설명하고 "TRICK OR TREAT!"을 서로에게 외치며 사탕을 선물하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이 날만큼은 어른들의 보호 아래 마음껏 '합법적으로' 일탈을 요구해도 된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 이것을 내가 이 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으로 삼으려 한다. 아픈 순간을 굳이 다시 꺼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인 것 같다.


그러니 모두 Happy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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