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여사님과 나

by 사라남기

입원하면 늘 마주치는 얼굴이 있다.

병원의 아침은 늘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고

청소도구 카트가 문턱을 넘기면 여사님은 내 침상 끝에 잠깐 서서 안부를 묻는다.


병실엔 나 같은 항암 환자가 많다.

속이 비어 흔들리는 날이면 남은 단백질 음료나 과일주스, 요플레를 조심스레 건넨다. “나중에라도 드세요.”

그 말은 위로이자 부탁이었다.

못 먹는 나 대신, 누군가라도 맛있게 먹길 바라며 건네고 나면, 손끝이 잠깐 가벼워진다.

그러나 마음은 늘 그만큼 가볍지 않았다.


두 번째 입원 때, 여사님이 말했다. “일하면서 열여섯 분이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꼭 잘 드셔야 해요.” 말끝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서 얼음처럼 번졌다.


세 번째 입원 때는 더 깊이 내려앉는 말. “아기 엄마도 있었는데, 아기 돌도 못 보고 갔어요. 못 먹으면 죽어요.” 여사님은 아마도 내게 힘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를 살게 하려는 말, 나를 흔들어 깨우려는 말.

그런데 그 말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살자는 다짐보다 먼저 올라온 건 숨이 가빠지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나로 버틴다.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날들이 있다.

누군가의 위로와 응원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같은 말이 여러 번 겹칠 때 내 어깨엔 보이지 않는 짐이 더해졌다.

“못 먹으면 죽어요.”라는 문장은 나를 살게 하려다,

살아 있는 나를 순간적으로 지워버렸다.

나는 여사님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나는, 선의로 던진 말도 칼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자리에서 배운다.


아이는 자란다. 내 우울을 모르는 듯 잘 자고,

하품하다 웃고,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더듬는다.

그 시간이 내게도 자란다.


주변의 말이 상처가 되는 날엔, 나는 문장을 바꾼다. “나는 아기 돌을 못 보게 될 엄마가 아니라, 아기의 내일을 위해 오늘을 통과하는 엄마.” 위로와 무게사이에 우리는 매일 말을 새로 고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의 선택을 기록해 둔다.

말로 다치지 않기 위해, 말로 다시 살아나기 위해.

엄마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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