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항암은 입원과 통원으로 나뉜다.
2박 3일 입원으로 시작해, 일주일 간격으로 통원 항암 두 번을 이어간다.
입원하면 첫날 오후엔 피검사를 하고,
둘째 날 항암 전 스테로이드와 구토 방지제를 맞은 뒤 항암 주사를 맞는다.
24시간 뒤 백혈구 촉진제를 맞고 퇴원한다.
퇴원할 때는 여러 부작용에 대비한 약을 약봉투 가득 챙겨주고,
그중 스테로이드는 항암 후 사흘째까지 복용한다.
처음 스테로이드 약봉투를 받았을 때 물었다.
“이 약은 며칠 분이에요?”
간호사는 짧게 답했다.
“한 번에 다 드세요.”
손바닥 위 알약을 다시 셌다. 열여덟 알.
물 한 컵에 마음까지 밀어 넣듯 넘겼다.
사흘째까지는 버틸 만하다.
넷째 날부터가 본격이다.
백혈구 촉진제의 부작용이 뼈를 먼저 두드린다.
손끝은 저리고, 메스꺼움이 밀려오고,
살은 아리고,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누워도, 서도, 앉아도 아프다.
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지
그제야 안다. 약을 먹어도 아프니까.
예전에 들었던 말이 있다.
최악의 숙취에 체기가 포개지고, 그 위로 트럭이 한 번 지나간 느낌이라고.
첫 항암 넷째 날, 그 문장이 과장이 아님을 알았다.
몸이 먼저 알아버렸다.
이전 입원 때 병실에서 부작용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는 며칠을 먹지 못했고,
또 누군가는 2주를 방에서 기어 다녔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꺼내자, 신생아를 키우며 항암 하는 나에게
입을 모아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버티는 건 오히려 아기 덕인지도 모른다고.
육아가 아니었다면,
내 아픔만 끝없이 바라봤을 테니까.
하루에도 수없이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안아 올리며,
눈 맞춤으로 하루를 채우는 동안
통증은 “아이가 먼저”라며 잠깐씩 비켜섰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래도 밤은 다르다.
아이가 잠들고, 남편도 잠든 밤이면
방의 소리가 낮아진다.
아직 아물지 않은 케모포트 상처를 소독하고,
거울 속 민머리를 가만히 훑다가
오늘의 통증과 내일의 두려움이 한 줄로 선다.
그때 마음이 얇아지고, 울음이 올라온다.
내 아픔이 또렷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일기를 쓴다.
울음을 미루기 위해.
내일의 나를 칭찬하기 위해.
그리고 내일도 살아남기 위해.
언젠가 이 기록도 부작용 없이 읽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