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m Africa
여행으로 나를 비우다
2014년 11월, 나는 무작정 유럽으로 떠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멀리, 가장 오랜 시간 고국을 떠났던 2010년 아프리카 여행 이후 정확히 4년 만이다. 아프리카로 떠날 땐 열정과 도전의 시간을 선택했지만, 이번 여정은 ‘비움’ 하나만을 생각했다.
아프리카를 만나기 전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이었다. 경쟁이 치열한 교육 제도 아래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쳇바퀴 굴리듯 ‘살아내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독일계 회사에 입사했지만,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사들의 모습을 보며 내 미래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열정 없이 아까운 시간을 보내는 삶. 나는 퇴직을 결심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빈민촌 아이들을 돕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 보고 싶었다.
4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아프리카 5개국을 돌았다. 여행 경비를 아끼고 주변의 후원을 받아 모기장을 구입했고, 잠비아·말라위 등에 후원했다. 여행을 하며 나는 다시 행복을 만났다. 그리고 진짜 ‘나’를 만났다. 성공만을 바라던, 지극히 현실적이었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이상과 꿈을 찾았다. 정반대의 삶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됐다. 어느 때보다 고생했어도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을 보내니 어느새 떠나기 전의 나로 돌아왔다.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배우고 느낀 행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시 남의눈을 의식하며 사는 삶만 있었고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나 자신을 이대로 둘 수 없어 다시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개월의 자유 시간. 무엇을 이루거나 얻기 위해 발을 디딘 게 아니었기에 편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독일에서 6개월을 보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도 찾아 보고 만화와 책도 읽었다. 한국에선 시간 낭비라 불리는 것들을 하염없이 누렸다.
수개월 동안 스쿠터로 유럽을 일주하기도 했다. 내일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만 바라보며 보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가슴속 깊은 곳까지 뻥 뚫려버린 것 같은 느낌을 얻었다. 내게 유럽에서의 10개월은 비움의 시간이 되었다.
비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비우면 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M매거진 '지구 유랑자들'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