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 67

아름다움의 본령인 생기가 사라져버린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by 이은




나는, 표피 환영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를 인간으로 느낄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기쁘게 세상의 다른 것들을 만나고 투명하게 존재한다. 나는 수면에서 헤엄친다. 내 월급을 기쁘게 받아들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보지 않고도 날씨를 감지한다. 유기체적인 모든 요소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돌이켜 음미할 뿐이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날, 나는 공원에서 모든 사물을 마음껏 즐긴다.

시립공원에서는 무언가 독특하고도 애처로운 것이 있어서, 나는 그것을 정말로 느끼고 감지할 수 있다. 나라는 지신도 감지할 줄 모르는 내가 말이다. 공원은 문명의 균열이다. 자연이 겪는 익명의 변화다. 그곳에는 식물들이 자라나지만 동시에 도로, 포장도로도 있다. 그곳에는 나무가 있지만 그 아래 그늘에는 베치가 놓였다, 이곳, 도시의 사방을 향해 뚫린 넓은 통행로에서 벤치는 더욱 커다랗게 보이며 거의 항상 누군가가 앉아 있다.

정밀하게 계산하여 오밀조밀 심어놓은 꽃들 자체를 반대하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꽃을 공공연한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든다. 화단이 폐쇄된 공원 안에 있다면, 나무들이 봉건제의 피난처를 초록으로 뒤덮는다면, 벤치들이 비어 있다면, 그렇다면 내가 공원을 이렇듯 목적 없이 관찰하면서도 분명 어떤 위안을 느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이곳 도심의 공원은 나를 둘러싼 온실과도 같다. 갖가지 색의 나무와 꽃들이 차지한 공간은 그들이 야생 상태를 유지할 만큼 넉넉하지는 않고, 야생을 아예 벗어나기에는 너무 넓다. 아름다움의 본령인 생기가 사라져버린 아름다움이 거기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이라도 온전히 나에게 속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나는 마치 희비극 속의 배우와도 같다. 의도적으로 비극의 연기를 하면서, 속으로는 정말로 더욱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궤도를 벗어나 멀리 날아가며, 나는 어딘가에 돌아갈 집을 갖고 있다는 상상에 빠진다. 그러다 그 사실을 잊으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여벌의 양복을 말끔하게 솔질해 걸어두고,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을 것이다.

그러나 환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원래 환상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고, 그리고 저녁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꽃들의 화려함과 나무의 그늘, 극장의 커튼처럼 드리워 있던 낮의 햇빛이 사라지면서, 내 망상의 그림들과 나의 인간됨 위로 저녁별이 장식된 커다란 무대가 돌연히 나타난다. 내 눈동자는 무정형의 객석을 잊은 채, 서커스에 온 아이처럼 신이 나서 최초의 공연을 기다린다.
나는 행방되었고, 나는 실패했다.
나는 느낀다. 오한이 난다. 나는 나다.

- 불안의서67





오늘은 여기서 마음이 머문다
근처 크고 작은 공원들을 산책하며, 그리고 최근에 자주 찾는 수목원을 생각하며, 나도 페소아처럼 이곳에서 독특하고도 애처로운 그 무엇을 찾는다

그의 생각에 동조를 하기 위하여 혹은, 곁길로 새기 위하여.



조승우는 말한다.
"나는 연기할 땐 캐릭터로 살고, 끝나면 그 인물을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인물을 향한 존중은 놓을 수 없다"
(인터넷 기사)



우리가 모두 생의 무대에서 삶을 연기한다고 치면 배우들은 얼마나 많은 삶들을 가진 자들인가?


비가 내렸고 밤이 시작되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월 둘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