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타이핑 이력

by 김주영

내 타이핑 소리는 유난히 크다. 마치 오래된 수동 타자기의 잔향이 아직 내 손가락에서 울리는 듯하다. 이 글을 타이핑하는 지금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이 부드럽게 손가락을 놀리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내 다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만다.


직장인 시절, 대여섯 명이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컴퓨터 앞에서 문서 작업에 몰두하던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의 타이핑 소리가 고요한 사무실을 깨우곤 했다. 내가 말없이 있어도 내 동료들은 내 타이핑 소리로 나의 존재를 인지하곤 했다. 어쩌다 옛 직장 동료를 만나면 나를 타이핑 소리와 함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 타이핑 소리가 두드러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대학 다닐 때, 수동 타자기로 타이핑을 배웠다. 당시 나는 총학생회 임원이었다. 학생회 일을 학과 공부보다 열심히 했었다. 학생회 비품 중에 수동 타자기가 있었는데 그때 타자기를 배웠다. 또박또박 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다. 연필로 쓸 때와 달리, 막연했던 생각이 타자기를 통과해 모양을 갖춰가는 느낌이었다.


수동 타자기 자판은 지금의 키보드와 달랐다. 자판을 치면 금속으로 만들어진 활자가 먹지를 밀어서 종이에 찍었다. 타이핑할 때 손가락 힘이 필요했다. 한 자 한 자 손가락에 힘을 줘 타이핑해야 종이에 선명하게 글자가 찍혔다.


그 뒤 2년 정도 지나자 PC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수기로 작성하던 리포트가 플로피 디스크에 담기기 시작했다. 나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타자기를 졸업하고 워드프로세서(한글과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틈날 때마다 ‘한컴타자연습’을 게임하듯이 했다. 분당 500타를 향하여 애국가 1절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이핑하곤 했다. 타이핑은 내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노동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했다. 논산에서 4주간 신병 훈련을 마치고, 병과를 정하는 날이었다. 나는 희망 병과를 조사할 때 특기란에 분당 타자수를 적었다. 그 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행정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자대에 도착하니 내가 근무할 중대 행정반 철제 책상 위에 수동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혼자 들기에는 버거울 무게감이 느껴졌다. 군대에서 다시 타자기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 무겁고 낯익은 기계와, 나는 2년이 넘는 군 생활을 함께했다. 다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타자기로 작성한 문서는 표를 그릴 수 없었다. 대신, 자를 대고 볼펜으로 하나하나 선을 그려 넣었다. 표가 들어갈 부분을 염두에 두고 타이핑하는 것도 요령 가운데 하나였다. 타자기로 글자를 진하게 만들거나 밑줄을 긋는 방법도 터득했다.


타자기로 문서를 만들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오타가 나면 종이를 새로 갈아 끼워, 처음부터 다시 타이핑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 군 생활이 잦은 야근으로 채어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잠든 내무반, 타자기의 타닥타닥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깨던 날들이 떠오른다.


타자기로 타이핑을 익혔던 손가락의 감각이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아직 내 손가락에 습관처럼 남아있다. 인간이 기계를 만들지만, 기계가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 타이핑을 하고 나면 손가락에 통증이 수반된다. 그때마다 손가락에 힘을 빼자고 다짐해 보지만, 습관처럼 스며든 그 힘을 완전히 놓기는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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