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감기로 느낄 수 없는 것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읽고

by 김주영

책 제목만 보면 영화 이야기일 것 같지만, 막상 읽다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은 영화보다 ‘지금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는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관람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관이 탄생한 이후, 우리는 100여 년을 들여 비로소 영상을 보는데 '장소와 시간, 물리적, 금전적 제약'을 걷어 냈다."(217쪽)


OTT 서비스 덕에,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수많은 영화를 시청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시청 환경이 디지털화, 개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영화는 영화관이 아니어도 개인의 스마트폰과 PC에서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기술의 변화로 영화 관람 환경, 더 나아가 영상 문화가 바뀌었다.


저자는 통계와 인터뷰를 인용하며,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기, 건너뛰면서 보기, 요약본으로 보기와 같은 시청 습관이 일반화되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1.5배속이나 건너뛰기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너무 많은 콘텐츠와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습관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봐야 할 콘텐츠가 너무 많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로 봐야 한다.


나도 가끔 강의나 예능 프로그램은 1.5배속으로 본다. 하지만 영화만큼은 다르다. 나는 가급적,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완전한 어둠 안에서 스크린의 빛을 응시하며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시청 습관은 영화관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OTT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변화가 가져온 편리함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현상의 이면에는 영화를 오락물로만 여기는 태도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인스턴트화라고 할까? 물론 영화에는 오락의 요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다. 영화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영화는 하나의 작품으로서 존재한다. 작품은 한 번 보면 끝나는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이 아니다. 좋은 책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듯 좋은 영화는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동반한다.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이 그 속에 깃들어 있다. 상영이 끝나도, 영화는 우리의 뇌에서 계속 상영된다.


영화는 음악처럼 시간을 타고 흐르는 예술이다. 우리는 노래를 빨리 감기로 듣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영화도 빠르게 넘기면, 그 영화의 시간 속에 함께 머무는 체험을 잃게 된다. 영화의 시간이 파도라면, 관객은 그 위에 올라탄 서퍼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이 죄어졌다 풀어진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한 놀이가 펼쳐진다. 플롯이 쌓이고 쌓여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영화는 몸을 관통한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경우가, 화면에 움직임이 없거나 대사가 없을 때라고 책에서 밝혔는데, 화면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거나 아무런 대사가 없다고 해서,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더 격렬한 심리적 동요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면 스토리를 이해하거나 보고 싶은 장면을 얻을 수는 있어도 정작 중요한 몸의 경험을 놓치게 된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있음에도 도보 여행을 즐기는 이유는 효율성에 앞서는 경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빠르게 소비한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시간을 요구한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단순한 길이가 아니라,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두께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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