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점은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해외여행이 본격화된 19세기 초, 독일 출신의 여행광이었던 칼 베데커는 여행지를 다니면서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베데커는 이 가이드북에 여행지별로 별표를 매겼다. 이것이 별점의 효시가 되었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 별점이 사용되면서 별점을 매기는 풍토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생활 전반에 두루 별점이 사용된다. 책이건 드라마건, 식당이건 숙소이건, 심지어 서비스와 사람까지도 별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넘쳐나는 소비재 앞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고민에 빠진다. 이때 별점이 도움을 준다.
우리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미 별점 시스템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수우미양가’로 표시되는 성적과 ‘ABCDF’로 표시되는 학점처럼, 우리는 늘 몇 개 등급으로 평가되었다. 학교를 나와 직장에 들어가서도 ‘성과 평가’라는 이름으로 인사 고과를 받아왔다.
인간의 뇌는 복잡한 걸 단순하게, 다양한 걸 단일하게 만들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이 더 이해하기 쉬우니까, 생각을 덜 해도 되니까. 별점은 이런 뇌의 본성과도 부합된다.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별점이 이제는 과잉이다. 별점으로 사회 전반이 넘쳐나니, 별점을 통한 선택도 쉽지가 않아 졌다. 선택 중의 선택을 해야 한다. 게다가 별점은 다수결에 의한 합리적 결정이 아니라, 소수의 손에 놀아날 위험성이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별점은 이런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돈을 주고 별점을 사거나, 조직적으로 악평을 올리는 행위에 속수무책이다. 별점에 ‘벌점’을 도입해야 할 지경이다.
별점이 불러오는 결정적인 폐해가 있다. 별점은 대상을 납작하게 만든다. 별 다섯 개로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느낌이나 감정 같은 섬세한 요소에 무감해질 수 있다. 별점은 개인의 개성이나 기질을 고려할 수 없다.
별점은 종종 전문가의 권위에 의존한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여전히 평론가의 별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영화를 본 후 알게 된다. 평론가의 별점과 내 감상은 다르다는 것을. 중요한 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상이다.
우리 생활 곳곳에 별점이 가득하므로, 나는 별점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느낀다. 별점에 기대지 않고 뜻밖에 마주하는 우연이 삶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별점 없는 순간에 삶의 진짜 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