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

by 김주영

대학교 1학년 때 종이 신문을 처음 구독했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이 창간되면서 구독을 시작했다. 정부가 올림픽 준비로 분주하던 1988년 봄이었다. 그 희망찬 분위기와 달리, 대학가는 시위가 하루걸러 이어졌다.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위에 적극 가담했다. 대학에 갓 들어온 나에게 한겨레신문은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했다. 한겨레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5.18의 진상을 제대로 마주했다. 활자와 사진을 내 마음에 꼭꼭 눌러 담았다. 나는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 뒤로 군대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한겨레신문을 계속 봤다. 여기 시골로 오기 전까지 나는 20여 년 동안 한겨레신문 애독자였다.


나는 신문 보는 걸 좋아했다. 신문은 나에게 만화경이었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쌓여서, 세상이라는 이미지가 조각조각 맞춰졌다. 나는 신문을 읽으며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감각을 키웠다.


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스포츠 등 기사를 분류해서 배치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관심의 영역이 바뀌듯 유심히 보는 신문의 면도 바뀌곤 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피가 끓었던 20대엔 정치면을, 일상에서 변화를 도모하던 30대엔 문화면을, 지적 욕구가 강해진 40대엔 책을 소개하는 섹션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나의 질문을 확장해 갔다. 그럼에도 내가 한결같이 잘 쳐다보지 않던 면은 스포츠면과 경제면이었다.


좋아하는 필자도 신문을 보며 생겼다. 그 필자가 쓴 칼럼이나 연재 글을 본받고 싶었고, 그런 글들을 가위로 오려 스크랩했었다. 반듯하게 오려낸 종이가 쌓여 한 권, 또 한 권 책장에 자리했다. 지금 책장엔 그 두툼한 스크랩북이 10여 권이나 꽂혀 있다.


요일별로 선보이던 고정 코너도 나의 흥미를 북돋웠다. 목요일엔 책과 관련된 코너, 금요일엔 여행과 관련된 코너처럼 말이다. 그 코너를 빨리 보고 싶어 해당 요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이제 종이 신문을 읽는 이는 거의 없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는 시대니까. 1990년대 60%를 넘던 신문 구독률이 최근에 3%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봤다. 나도 지금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본다. 내가 사는 시골에 신문 배달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신문을 뒤적이던 손이 이제는 무심히 스마트폰 화면을 넘긴다. 그럼에도 종이 신문이 더 좋은 건 세상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자칫 편향될 수 있는 시야를 넓혀준다.


신문 배달원이 아침마다 문 앞에 던져놓고 간 한겨레신문을 집어 들던 때를 떠올린다. 그때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세상과 대면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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