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들에게 첫사랑은 포장된 기억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첫사랑만큼 나에게 각색과 윤색을 오가며 채색된 기억도 없을 거다. 판타지의 최고봉이다. 고집스러운 추억이어서, 겹겹이 덧칠된 수채화 같다. 내 첫사랑의 기억은 과도하게 자의적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잘 모르겠는 기억의 모호함이 반영되어 있다.
짝사랑도 첫사랑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첫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A였다. A의 모습은 그때 모습 그대로 내 기억에 박제되어 있다. 마치 빛바랜 앨범에 꽂힌 사진처럼, A의 얼굴 생김새와 머리모양, 눈매와 콧잔등, 입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검은 단발머리에 얼굴이 도톰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미소를 지으면 동그란 얼굴선이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여자 앞에서 낯가림이 심했다. A를 좋아했으나, 말 한번 걸지 못했다. 어쩌다 A 앞에 서면 자연스레 고개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A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방과 후 꼬질꼬질한 흰색 러닝 차림으로 또래 아이들과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을 때였다. 정신없이 뛰다가 한 골목길에서 A와 우연히 마주쳤다. A가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A를 쳐다봤다. A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꾀죄죄한 내 몰골을 들킨 것만 같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 망했다.
A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초등학생 아이가 이성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걸 좋지 않게 보던 때였다. 감정을 표현할 방법도 몰랐다. 속으로만 삭이며 체념했다. 그렇게 나의 짝사랑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에게 남은 걸 졸업 앨범에 담긴 A의 모습뿐이었다. 반 전체 아이들이 찍힌 사진에 앞줄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A가 영원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 뒤 남자들만 다니는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조금 더 커진 남자들만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자라곤 엄마밖에 몰랐던 나는 점점 더 여자 앞에 서는 걸 어려워하는 남자가 되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한창 입시에 열을 올릴 시기였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반창회를 한다고 알려 왔다. 반창회에 갔다. 이층에 있는 중국집이었다. A가 있었다.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나는 그녀 앞에 앉게 됐다. 나는 내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어느덧 식사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식당 1층 입구에서, 나는 그녀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계단에서 그녀가 내려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심장이 쿵쾅대는 걸 잠재우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 연락하고 싶은데, 주소 좀… 알 수 있을까?” 그녀가 선뜻 주소를 적어줬다. 그렇게 둘은 편지를 한동안 주고받았다.
그녀는 상업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졸업하면 은행에 바로 취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편지를 몇 번 주고받다가, 내가 만나고 싶다고 썼다. 그녀로부터 긴 답장이 왔다. 소소한 일상이 묻어 있었다. 편지 끝부분에 너 대학에 들어가는 게 우선이니, 대학에 입학한 뒤에 생각해 보자고 적혀있었다. 그 뒤로 한두 번의 편지가 더 오가고,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서의 경험이 담긴 편지를 끝으로, A와 더 이상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누가 먼저 편지를 중단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중단된 편지와 함께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나의 시시한 짝사랑이자 첫사랑의 기억이다. 나는 왜 A를 첫사랑으로 기억할까? 때로는 고집스러운 집착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즉 아쉬움에 더 집착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물거품 같은 거 아닐까. 이제 그 물거품을 터뜨려야겠으나, 기억이란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터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상처가 아물 듯 그냥 두련다. 세상만사 인연 따라 흘러가는 물처럼 흐름에 맡기듯이. (*)
/이미지는 AI를 이용해 구현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