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요즘 최면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최면을 경험했습니다. 막연히 최면은 가수면 상태로 빠져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막상 최면에 들어가자, 의식이 또렷해서 놀랐습니다.
아내의 안내에 따라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고, 감정의 잔여물이 남아있는 최근 기억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그 기억을 매개로 어릴 적 최초의 기억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 안에 머물렀습니다.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방안에 나와 엄마 둘이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두 다리에 이상이 생기자 어리둥절하던 때였습니다. 어린 나는 다시는 두 다리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상이 잿빛으로 보였습니다. 엄마는 약을 먹이려고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엉금엉금 기어 도망갔습니다. 막다른 곳에 이르자 벽에 오르려고 시도했던 몸부림이 기억납니다. 그때의 감정과 기분에 다가갔습니다.
평소에 문득 떠오르던 기억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내 삶에 낙인처럼 찍힌 이미지였습니다. 그런 최초의 기억에는 언제나 강렬한 감정이 스며있습니다. 두려움을 느꼈던 최초의 기억, 창피함을 느꼈던 최초의 기억. 불쾌한 감정과 유쾌한 감정.
그 기억 안에 충분히 젖은 뒤, 아내의 목소리는 나를 새로운 상상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마주 앉혔습니다. 서로 바라보며 격려와 위로를 건넸습니다. 애썼다고, 고맙다고,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순간 주변이 나를 포근히 감쌌습니다.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온몸에 따뜻함이 번졌습니다. 뾰족한 기억들이 무뎌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하나로 합쳐질 무렵, 아내는 나를 최면에서 깨웠습니다. 눈을 떴을 때, 닫힌 눈꺼풀에 막혀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처음 받은 최면은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오래된 상처의 심연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과거의 나에게 가서 오해를 풀거나 화해를 시도하는 의식(儀式) 같기도 했습니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은 때로 나를 지배하지만, 그 기억을 직시하는 순간 기억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날 이후, 기억을 다루는 일은 어쩌면 나 자신을 다루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미지는 AI를 이용하여 구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