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경양식집

by 김주영

고등학교 때 처음 경양식집에 갔다. 30년도 넘은 일이다. 대입학력고사를 마치고 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였다. 우리 가족은 당시 세 들어 살았었는데, 주인집 아들 A가 합격을 축하한다며, 나를 경양식집으로 데려갔다. A와 나는 동갑이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함께 다녔다. 자연히 친구가 되었다.


A가 사는 집은 내가 사는 집과 달랐다. 전화가 있었고 TV가 있었다. 전화를 받거나 TV를 보기 위해 A의 집 거실을 들어설 때, 넓고 반듯한 거실이 마냥 부러웠다. 내가 살던 곳은 거실이 따로 없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모님이 쓰는 방과 나와 동생들이 같이 쓰는 방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졸업식이 끝나고 중국집에 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A가 데려간 경양식집이 나에게는 얼마나 생소한 경험이었겠는가. 처음 간 경양식집은 종로의 한 건물 이층에 있었다. 푹신한 가죽 소파와 번들번들 윤이 나는 테이블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다방처럼 테이블마다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데 아는 음식이라곤 돈가스밖에 없었다. 나머지 메뉴는 낯선 이름이었다. 그나마 돈가스를 아는 건, 어쩌다 한 번씩 엄마가 시판용 냉동 돈가스를 특별식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A는 돈가스를 주문했다. 나도 같은 걸 주문했다.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냅킨 위에 세팅되었다.


곧이어 말간 수프가 말끔한 자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 한동안 멍하니 접시만 바라봤다. 잘못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쩔 줄 몰랐던 나는 A가 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 했다. 수프를 국 떠먹듯이 먹어 치우자, 잠시 뒤 돈가스가 나왔다. 나는 그때까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보지 않았다. 친구의 손동작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설프게 따라 했다. 왼손엔 나이프, 오른손엔 포크. 쥐어야 할 도구를 의식하며 어색하게 칼질을 했다. 순서에 따라 애피타이저, 메인 음식, 디저트가 따로 서빙되는 것도 처음 받아보는 경험이었다.


가난은 경험을 여러모로 제약했다. 나는 왠지 A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A를 부러워했으나, A의 어머니는 당신 아들의 성적과 나의 성적을 비교하며 내 엄마를 부러워했다.

이날, 돈가스나 수프의 맛보다 처음 경험한 음식문화에 당황했던 모습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난 때문에 경험을 못 한 게 죄는 아닌데, 나는 왜 그 자리에서 A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부끄러움이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그날의 부끄러움은 단순히 포크질이 서툴렀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난이라는 제약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가난은 어린 시절 내내 나의 마음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오히려 가난이 나의 소중한 경험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내게 가난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


/이미지는 AI로 구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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