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새겨진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 내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를 따라 한 친척 집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내 또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기억은 없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 그 아이와 헤어져야 했던 순간은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아이와 떨어지기 싫어했고, 조금 울먹였다. 아쉬운 마음에 택시 뒷유리를 통해 그 아이가 배웅하던 모습을 계속 바라봤다. 약한 빗방울이 택시 뒷유리에 떨어져 흐르고 있었고, 창 너머로 멀어지는 그 아이가 보였다. 그때 그 장면이 마치 카메라에 찍힌 사진처럼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 알았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른다는 것. 그것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그때 내 몸에 공기처럼 스며들었던 쓸쓸한 기운을 기억한다.
그 뒤로 이 기운은 내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매번 양상을 달리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길을 걷다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목적지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나는 사람들. 순간순간 만났다 떠나는 사람들.
이런 쓸쓸한 기운은 비단 사람과의 사이에서만 생기지 않았다. 꽃이 질 때도 강렬하게 번졌다. 봄이 오기도 전에 미리 져버린 목련꽃을 볼 때 특히 그랬다. 검은 아스팔트 바닥에 환하게 떨어진 목련잎을 보고 있자면 짧은 생이 끝나버린 듯해 마음이 아렸다. 피면 반드시 지는 꽃들. 해가 환할 때 꽃이 상실의 정서를 자극했다면, 해가 질 때는 노을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공연이 끝난 무대에서도 나는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샤프의 노래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 가사가 이를 잘 표현한다. 박수와 환호를 해주던 관객이 모두 떠난 무대. 그 자리에 홀로 남아있는 나. 그들과 함께했던 찬란한 순간은 지나갔다. 그때 느껴지는 쓸쓸함.
쓸쓸함은 어떤 대상에나 깃들 수 있었다. 사람뿐 아니라, 꽃과 빛, 그리고 연극 무대에도.
어릴 때 처음으로 경험했던 헤어짐의 기억이 내 정서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로 자라, 쓸쓸함의 잎이 피다 지다 반복하고 있다. 결국 쓸쓸함은 상실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감정이었다. (*)
/이미지는 AI로 구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