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이맘때 나는 잠시 산타가 되었다. 아니 산타로 변장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만 구천구백 원을 주고 산, 산타 분장 세트를 이용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 우리 부부를 포함해 네 가족이 우리 집에 모였다. 우리 부부는 자식이 없지만 다른 세 부부는 각각 한 살, 두 살, 세 살, 여섯 살 네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를 보여주고 싶었다. 동심을 잃은 어른의 뒤늦은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하얀 털 장식이 달린 빨간 옷에, 솜 같은 수염을 붙이고 산타 모자를 눌러썼다. 거기에 빨간색 선물 보따리를 메니 제법 산타처럼 보였다. 그렇게 풀장착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거실 앞에 등장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수염도 당기고 얼굴도 만져볼 거란 생각은 오산이었다. 산타로 변장한 나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고, 누군가는 엄마 목을 꽉 붙잡았다.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도 산타로 변장한 값은 해야겠기에, 미리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받아 놓은 선물을 보따리에서 꺼내 아이들에게 건넸다.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오는 걸 겁냈고, 한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까스로 부모들이 아이를 안고서 내게 다가와 선물을 받아 갔다.
아이들에게 산타에 대한 동심을 심어주려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산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셈이 되었다.
리얼리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TV에 나오는 산타처럼 배가 나오지 않았다. 굴뚝을 타고 내려온 것도 아니고,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산타는 생각보다 훨씬 큰 존재였던 모양이다. 이만 구천구백 원짜리 산타로 감당하기엔. (*)
/이미지는 AI로 구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