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치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 시간만 되면 체감하는 실상이었다. 축구, 배구, 농구 등 남들보다 구기 종목을 배우는 게 느렸다. 공 다루는 걸 유난히 힘들어했던 나는 체육 시간이 곤욕이었다.
내가 몸치라는 걸 절감한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열풍이 불 때였다. 연습 첫날, 선배들이 춤 동작을 가르쳐 줬다. 내가 춤 동작을 따라 하자 선배들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한숨을 내쉬는 선배도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말했다. 로봇이 추는 춤 같다고. 춤을 추기에 내 몸은 유연하지 못했다. 절망했지만, 공강 시간에 연습실 구석에서 남들 눈을 피해 춤사위를 반복했다. 남모르게 연습하다 보니, 그럭저럭 내 나름의 ‘개성적인’ 춤이 만들어졌다. 이때 개성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영화나 TV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배우를 보면 나도 저렇게 추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영화 <아비정전>의 한 장면인 장국영의 맘보 춤을 따라 하곤 했다. 뭐, 아무리 해봐도 어설프긴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음치처럼 몸치도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규정하는 걸까?
무엇보다 궁금한 건, 혼자 있는 시간에도 춤을 자유롭게 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도대체 이러한 구속 상태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시선이 나의 몸을 통제하고 있다니. 이런 내 모습에 섬뜩함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길치이기도 하다. 길을 잘 못 찾는 것도 몸치의 확장일까. 몸치와 길치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길치로 인해 생긴 흑역사가 많다. 집을 옮기면 한 달가량은 집을 찾아 길을 헤매곤 했다. 집 근처 골목만 들어서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타고난 몸은 나의 조건이다. 그 조건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게 주어진 것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삶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은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비록 나는 몸치지만, 나만의 리듬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
/이미지는 AI를 이용하여 구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