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널기

by 김주영

아내와 결혼 전 동거를 했었다. 그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햇볕 좋은 날이면 옥상에 빨래를 널곤 했다.


어느 휴일 오전이었다. 아내는 외출했고, 나는 빨래를 해서 옥상에 널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가로와 세로로 늘어선 빨래들이 운동회의 만국기 깃발처럼 펄럭였다.


오후 늦게 아내가 돌아왔고, 빨래를 걷겠다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잠시 뒤 빨래통에 마른 옷을 담아 거실로 돌아온 아내가, 마치 못 볼 거라도 보고 온 사람처럼 나를 동그랗게 쳐다봤다.


아내는 옥상에서 목격한 장면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빨래를 걷으러 옥상에 올라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초현실적이었단다. 수건과 양말, 긴소매와 반소매, 와이셔츠와 티, 바지와 치마, 상의와 하의가 섞임 없이 나누어져 있는 모양에 놀랐단다. 더군다나 수건은 색깔별로 널려있고, 수건의 끝단이 칼로 잰 듯 줄 맞춰 늘어선 모습에 입이 벌어졌단다.

그리고 바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 남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내가 이런 사람과 살아도 되나?”

나에게는 당연했던 빨래 널기 방식이 아내에겐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어쩌다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때의 광경을 술안주 삼아 얘기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정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의 정리벽은 아직도 유효해서 청소할 때나 설거지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청소할 때는 티끌이나 미세한 얼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아침에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물티슈나 휴지를 들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얼룩을 빡빡 지운다. 설거지도 꼼꼼하게 하는 편이라 아내는 물을 낭비한다며 핀잔한다.


이 같은 정리벽이 집착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오래 밴 습관이라 쉬이 바꾸지 못한다. 삐뚤게 놓인 신문이나 메모지를 반듯하게 고쳐 놓으며, 내가 정리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그럴 때 속으로 되뇐다. “조금 헝클어져도 괜찮다!”, “이대로도 좋다!”


종류별로 가지런히 널린 빨래보다, 종류와 상관없이 뒤섞여 펄럭이는 빨래가 삶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애써 모든 걸 반듯하게 맞추며 살 필요는 없겠다. (*)



/이미지는 AI로 구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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