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견 뽀

by 김주영

우리 집 진돗개 뽀가 급격히 노쇠해지고 있다. 잘 걷지도 못하고 치매까지 왔다. 좋아하던 산책도 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뒤뜰에 있는 자기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꼬리를 흔들며 내 주위를 돌던 녀석이, 이제는 집 안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사료도 거의 손을 안 댄다.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을 내밀어야 그제 겨우 입을 갖다 댄다. 며칠 전부터 목적 없이 간헐적으로 짖는다. 낮게 울리는 뽀의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곤 한다.


뽀의 나이는 열두 살이다. 노령견인 셈이다. 갓난아이 때 우리 집에 왔다. 진돗개 새끼들의 운명이 대개 그렇듯 뽀도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을 떠나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져야 할 신세였다. 당시 마당 딸린 주택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나는 뽀와 인연을 맺게 됐다.


뽀는 어릴 때 집 안에서 자랐으나, 몸집이 커지자, 바깥으로 나갔다. 한동안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뽀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본능이 강해, 멋모르고 집 마당으로 들어온 네발 동물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느 휴일, 집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철판을 긁는 듯한 괴성이 들려 나가 보니, 뽀가 길고양이 허벅지를 물어 흔들어대고 있었다. 맨발로 나가 뽀의 몸뚱이를 부여잡고 길고양이에게서 떼어내려고 사투를 벌였다. 내 몸의 반 정도 크기였던 뽀는 이미 내 완력을 능가했다. 가까스로 길고양이를 구했으나, 그 아이는 도망가지도 못하고 한동안 우리 앞에서 굳어있었다. 하루는 뽀를 피해 나무 위로 피신한 너구리를 목격하기도 했다. 겁에 질려있던 너구리의 구겨진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돌보는 생명이, 동시에 다른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더 이상 뽀를 마당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게 둘 수 없었다. 마당 한쪽에 철장으로 울타리를 쳐 그 안에서 지내게 했다.


대부분 개가 그렇듯 뽀도 산책하는 시간을 제일 반긴다. 시골에 와서 뽀의 산책 반경은 훨씬 넓어졌다. 도시에 있을 때보다 햇살과 공기를 더 즐겼다. 햇빛 좋은 날이면 양달에 나와 코를 실룩거리며 햇살에 오래도록 몸을 맡겼다. 마을 뒷산을 함께 오르기도 했다. 산 중턱까지 오른 뒤 내려가자고 목줄을 당기면 뽀가 온몸에 힘을 주어 버티곤 했다.


이제 몸을 위아래로 가볍게 튀기며 걷던 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뽀와 아기 때부터 함께했으니, 나는 뽀의 생애를 함께한 셈이다. 반려동물과 살면 그 생명의 생로병사를 지켜보게 된다. 생명의 운명을 직시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나뭇잎이 녹색에서 갈색으로 바뀌는 것처럼, 뽀 또한 머지않아 생을 마감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눈꺼풀을 반쯤 떠 나를 쳐다보는 뽀의 눈동자에서 아기 적 표정이 겹쳐 보인다. 너와 나는, 지금 이 순간, 같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 흘러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만남은 축복이다. 이 드넓은 세상에 사람과 개로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기적과 같은 일이다.


점점 노쇠해지는 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너의 존재를 자각하고 성의를 다할 뿐. 쳐다보고, 어루만지고, 내 눈길과 손길을 느낄 수 있게. 곁을 지키는 존재를 마지막까지 느낄 수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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