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
우리는 관계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런 모습을 ‘분인(分人)’이라 불렀다. (<나란 무엇인가>, 이영미 옮김, 21세기북스, 2015)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내가 관계하는 대상 수만큼 내 모습이 존재한다.”
여기서 내가 관계하는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유무형 모두를 포함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직장 상사를 대할 때의 나, 고양이와 함께할 때의 나, 책을 읽을 때의 나,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대상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을 ‘분인(分人)’이라 부르며, 개인(個人)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분인은 ‘나’ 중심에서 타자와의 ‘관계’ 중심으로 사고를 이동시킨다. 내가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구성된다고 본다.
분인의 관점으로 타인을 한번 바라보자.
우리가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관계 맺는 상대의 ‘분인’일 뿐이다. 상대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니 관계는 늘 상대적이다. 너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상대의 변화 가능성을 늘 열어둔다.
분인의 관점으로 사랑을 표현한 대목을 아래에 옮겨본다.
“사랑이란 상대의 존재가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당신의 존재로 말미암아 상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분인이 좋아서 그 분인으로 좀 더 살고 싶어진다.” (173쪽)
분인의 관점에서 살인은, “피해자의 생명은 물론이고, 그 모든 분인을 앗아가 버리는 것이다.”(194쪽)
결국 누구와 인연을 맺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누구와 같이 있을 때 좋은가?
누구와 같이 있을 때의 내가 좋은가?
어쩌면 좋은 인연이란 좋은 분인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