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이는 내 아침 산책 파트너다. 이름에서 느꼈겠지만, 양양이는 털 모양이 꼬불꼬불한 갈색 푸들이다. 스탠더드 푸들보다는 작고 토이 푸들보다는 큰 중간 크기 푸들이다. 양양이를 두 손으로 들어 안으면 이십 킬로짜리 쌀 포대를 들어 올리는 정도로 무게감이 느껴진다. 생김새는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 포비를 떠올리게 한다. 멋대로 자란 털이 얼굴에 덥수룩하다.
내가 양양이와 함께 산 지는 십 년이 넘었다. 양양이는 아내가 동물보호소에서 데려왔다. 누군가 키우다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양양이는 안락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를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아내는 당시 같은 처지의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양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임시 보호를 하면서 입양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 뒤 한 달 정도 지나서 양양이와 함께 왔던 개 둘은 입양을 갔으나, 양양이는 끝내 입양을 가지 못했다. 도리 없이 우리 부부가 키우게 됐다.
양양이는 인간이 보기에 무던한 성격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개’라는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쓸 때, 양양이는 바로 그 ‘개 같은 성질’을 떠올리게 했다. 개는 대개 낯선 사람이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 짖는데, 우리 집 개 양양이는 우리 부부를 향해 더 열심히 짖는다. (양양이는 마당에서 지낸다.) 밥 달라고 짖고, 산책 가자고 짖고, 나 좀 봐 달라고 짖고, 부엌에서 수박을 썰어도 짖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짖고 하루에도 수백 번을 짖는다. 양양이가 우리 부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짖는 소리는 낯선 사람을 향해 짖는 소리와 결이 다르다. 더 열의에 차 있고, 격렬하고, 리듬과 강세가 불규칙하다. 어떤 때는 우리에게 호통을 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와 비교해서 낯선 사람에게 짖는 소리는, 최소한 개로서의 소임을 지키겠다는 듯 성의 없이 내뱉는 것처럼 들린다. 리듬과 강세가 일정해서 정중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양양이는 질투심이 많고 고집이 세다. 우리 집에는 양양이 말고 비슷한 나이대인 백구 뽀가 있다. 양양이는 늘 뽀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 같다. 몇 번 양양이가 질투심을 참지 못하고 뽀를 향해 달려든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뽀에게 뒷다리나 엉덩이가 물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양양이는 뽀를 향해서 적대적으로 짖어댄다. 그래서 둘은 서로 격리되어 있다. 산책도 따로 하고, 밥도 따로 준다. 둘이 같이 어울리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양양이는 집에서 가출한 적도 있다. 전에 살던 집에서였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양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전단지를 길가 전봇대 여기저기 수십 장을 붙였다. 다음 날 집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내 도로변에서 배회하고 있던 양양이를, 누군가 발견하여 동물보호소에 신고했다. 우리 부부는 처음 양양이를 데려왔던 동물보호소로 다시 가서 양양이를 데려와야만 했다.
양양이는 영민한 면도 있다. 수년 전이었다. 캠핑을 가기 위해 차 트렁크에 짐을 싣다가 집 마당에 빵을 흘린 적이 있었다. 짐을 다 싣고 양양이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려는데, 평소 같았으면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안겼을 양양이가 그날따라 얌전히 자기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에 양양이 집 안을 살펴보니 안쪽 깊숙이 빵 하나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나중에 우리 부부가 없을 때 먹을 요량이었으리라. 양양이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어리둥절한 고갯짓을 했다. 시치미를 뚝 떼고 쳐다보던 양양이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껏 양양이를 말썽꾸러기처럼 썼지만, 양양이는 아침마다 나를 달리게 하는 트레이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양양이는 산책을 할 때 질주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뛴다. 나는 매일 아침 양양이 덕에 자연스럽게 산책과 달리기를 한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 양양이만큼 나를 격하게 반기는 아이도 없다. 양양이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그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을 뿐이다.
양양이와 살아오며 모든 관계는, 그것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물건이라도, 자기 뜻과 무관하다는 것을 여실히 알았다. 모든 관계는 내가 세운 기준과 기대를 번번이 넘어선다.
지금도 양양이는 우리를 향해 짖고 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소리가 단지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니라, 내 내면을 단련하는 시간이 시작됐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 애초에 좋고 싫음이 없다는 걸.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