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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계보

by 레알레드미

자식은 식탁에 앉은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을 보며

마르고 긴 암갈색 그림자에서 절절한 외로움을 읽는다

부인을 잃고 입맛을 잃은 한 남자의 구시렁거림을

생업이 바빠 효도할 기회마저 잃은 자식이 듣고 있으니

어린 눈에 비친 아버지는 크고 힘센 사나이였으나

이제는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초라한 고사목 같

자식은 아버지 품을 벗어나 세상의 밭들을 구르고

자기 터전을 일구느라 하루를 전쟁처럼 살아내며

아버지와 한 식탁에 마주 앉을 시간마저 없으니

견고한 성벽도 세월의 거친 바람에 빗장이 헐거워진다

짧은 행운은 공치고 빚만 늘린 아버지는

삶이 게으르지 않았으나 불운 탓에 가난했으며

거친 세파에 뭉그러진 자식 또한 그러했으니

인생은 찰나에 사라지는 무명의 얼룩들이지만

자식은 발치에 놓인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며

세월이 지운 아버지의 책 속에서 제 유전자를 비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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