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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Apr 10. 2021

이 악무는 여자

홍콩 치과에서


치과에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입구서부터 발열체크는 물론 문진표를 받아 들고 최근 14일의 행적에 대해 점검했다. 이름이 호명되어 안쪽으로 들어가니 간호사 선생님이 손소독제를 권했다. 지정된 장소에 마스크를 벗어두자 의사 선생님이 티슈로 내 마스크를 덮어주었다. 입안을 소독제로 약 1분간 가글을 한 후에야 내 입은 얼음땡. 그때부터 의사 선생님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원래 내 담당 선생님 스케줄이 꽉 차서. 다른 분께 배정되어 왠지 좀 어색했다. "불편한데 있나요?" 의사의 첫 질문에 난 괜찮다고 하고 그냥 정기검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예약 확정 당시에 이미 코비드 19 때문에 스케일링은 수작업만으로 진행된다고 고지를 받아서. 알고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무엇보다 되게 아팠다.


치아 상태는 예전과 비슷하다고. 딱딱한 거 먹을 때 어금니 깨질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라고. 늘 듣던 말이지만. 선생님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으니. 이 참에 평소 궁금했던 부분을 더 물어봤다. 답이 같아 오히려 안심이 됐다. 양치 잘하고 치실과 치간칫솔을 꼭 쓰라는 얘기. 이를 악 물지 말라는 경고...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의식적으로 이를 악물어왔다.


눈물이 나면 이를 물었고. 잘하고 싶을 때도. 아픔을 참으려고  이를 물었다. 슬픈 꿈속에서도 이를 악물어. 깨어나면 턱이 얼얼할 정도였다.  나이까지 치아가 건강한 사람이 드물긴 하지만. 진작 알았더라면 그리 악물고 살아오진 않았을 텐데. 후회가 된다.


이를 악 물지 말라는 경고를 치과에서 난생처음 들었던 날. 한 십수 년 전인데. 그게 나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닌 걸 알지만. 그 말을 해준 의사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나도 모르게 내 치아에 나이테처럼 기록이 되어있었는지. 그걸 알아봐 준 거 같아서. 그 이후 아무리 바빠도 6개월마다 치과 정기검진은 빠짐없이 꼭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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