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걷게 만드는 그대, 포켓몬고
공원 산책이 여러모로 건강에 도움이 되고 포켓몬고(Pokémon GO)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라이치콕 공원 (荔枝角公園, Lai Chi Kok Park)을 찾아갔다. 이곳은 필자의 집에서 지하철(라이치콕 MTR역 C3 출구)을 타고 약 40분 거리에 있는 조금 낯선 곳이었다.
라이치콕 공원은 예상보다 상당히 넓고 매우 아름다웠다. '보보경심'같은 중국 고전 드라마에 나올법한 풍경의 산책로가 펼쳐졌다. 나무도 많고 깔끔하고 고풍스럽게 정돈된 정원과 특히 연못이 매력적이었다. 홍콩의 높은 아파트 숲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랄까. 아, 하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푸근히 내려놓아지는 것이 있었다. 연못 위에 구렁이를 등에 업은 거북이 형상이 떠 있는 것도 보이고. 그래서 이곳에서 꼬부기(Squirtle)가 많이 나오는 걸까!? 왠지 정말 게임 속 세상에 있는 기분이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조용히 나만의 포켓몬을 헌팅하고 있는 순간,
"Oh?"라는 메시지와 함께 게임의 모든 행위는 중단되었다. 알은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고 찬란한 빛 가운데서 무언가 나타났다. 하나의 포켓몬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우아!!!! 라프라스(Lapras)다. 체육관(Gym)에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능하다고 알려져 있는 포켓몬인데, 워낙 희귀하다 보니 그동안의 헌팅으로는 도무지 구할 수 없었다. 이렇게 대면을 하게 되니 진짜 내가 뭐라도 해낸 듯 기특하기까지 했다.
게임 초반엔 인큐베이터가 두 개 정도 주어지니 하루에 포켓몬 한 두 마리가 깨어나는 걸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돈을 들이지 않고 포켓몬고를 즐기자는 내 나름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Shop에서 파는 인큐베이터가 탐이 나긴 했지만, 그냥 기본으로 버티기로 했다. 10km 정도는 공을 들여줘야 좀 더 희귀한 포켓몬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일단 10km짜리 알부터 품기 시작했다. 근데 바로 거기서 라스라스가 나온 것이었다.
속초에는 알까기 알바가 등장했다.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에서 고용한 분들이 전동윌을 타고 일정 속도로 달려서 대신 알을 부화시켜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재미로 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남이 대신해주었을때 필자가 느낀 만큼의 감동을 얻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이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게임에 필요한 모든 아이템을 파는 Shop에서조차 신기하게도 알을 팔지 않는다. 럭키 에그(Lucky Egg)는 포켓몬의 알이 아니니까 제외하자. 가상공간이지만 생명을 사고파는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임 설계자 나름의 철학이 아닐는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높게 평가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