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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Nov 25. 2016

타이오 마을의 숨은 보물

세개의 랜턴을 찾아서

타이오 빌리지는 홍콩 첵랍콕 공항이 위치한 란타우 아일랜드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홍콩에서 수상가옥을 볼 수 있는 몇 곳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노을을 감상하기 제일 좋은 위치에 재미난 카페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봤다.


버스에서 내리니 타이오 마을임을 알리는 큰 조형물이 보인다.


버스를 타고 타이오 마을 입구에서 내려 좁은 골목을 지나 한참이나 카페를 찾아가는 길에, 작은 점방에서 정갈하게 말린 건어물을 팔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이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 소박하면서도 정겨워서 잠시 사진을 찍고자 걸음을 멈췄다. 필자를 발견하시고는 카페를 찾고있는가 물었다.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시며, 그 곳에 카페가 생기면서 오가는 사람이 많아져 당신들 장사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며 기뻐하셨다.


관광객들이 점방에서 건어물 몇가지를 고르는 것을 할아버지가 거들어주신다.


두 분 모두 연세가 팔순이 훌쩍 넘으셨다는데 어찌나 귀도 밝으시고 목소리도 맑고 정정하시던지. 노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를 목격한 순간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이 마을은 장수 마을로도 유명하다. 홍콩이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가 된 배경에 이런 마을이 있다고 봐야겠다. 그만큼 타이오는 평온하고 공기 좋고 근심 없이 생을 즐기는 분들이 사는 동네인 것 같았다.


노부부가 서로를 의지하며 성실히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내받은대로 수상가옥들 사이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 끝자락에 다다르니 정말로 만화에나 등장할 것같은 카페가 보였다. 트리플 랜턴 카페(Triple Lantern Cafe, 三盞燈茶座)의 테라스에는 이미 손님들이 와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와 같은 번듯한 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카페의 이름처럼 가게 초입에 서 있는 막대 위에 걸려있는 3개의 빨간 랜턴이 그곳이 카페임을 알려주었다.


노을로 점화되고 있는 세개의 랜턴. 물 위에 떠있는 카페의 소박한 모습이 서정적인 시 한편 같았다.


메뉴는 이탈리안 음식 위주로 준비되어 있었다. 주인 부부가 타이오 토박이 분들이어서 홍콩 음식들도 퓨전스타일로 마련되어 있었다. 필자는 피자와 어묵 튀김을 주문했는데 아주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꺼지지 않는 촛불 조명 아래서 마신 차도 무척 향기로웠다.



카페 여주인인 줄리아는 오랜 유럽 생활을 접고 다시 타이오로 돌아온 이유가 고향만큼 좋은 곳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가게를 연지 이제 겨우 일년이 되었다는데,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까지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으니 그녀의 행복감은 더욱 커졌을거라 짐작했다.


카페 2층의 모습. 인위적인 인테리어를 완전히 배제한 정말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의 일부였다.


이제 막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서 카페로부터 저 멀리 보이는 다리 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들 좋은 자리를 잡고 천체의 신비를 사진에 담고자 했다. 필자도 홍콩에 살면서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석양을 감상했던건 처음이었다.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고 이렇게 멋진 하늘을 본지가 참 오랜만이었다.


찬란히 불타오르다 끝내 어둠이 내리는 하늘을 마냥 보고 있으니 이렇게 멋진 우주쇼를 매일 놓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리아는 12월 중순에 오면 더 황홀한 노을을 볼 수 있을거라고 장담하며 그때 다시 오라고 했다. 꼭 다시 들르겠다고 그녀에게 그리고 나에게 약속했다.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빛나는 순간이었다. 마치 인간의 생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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